[취재일기] 어린 목숨 앗아간 어른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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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광복절인 15일 영.호남의 경계를 흐르는 섬진강에서 발생한 유치원생 네명의 참사는 어른들의 무모함과 생색내기가 빚어낸 사고였다.

부산과 광주 YMCA가 공동 주최한 '도전, 섬진강 헤엄쳐 건너기' 행사는 영.호남 어린이들이 한데 어울려 통일과 지역화합을 기원한다는 취지에서 지난해 시작됐다.

지난해 첫 행사의 반응이 좋자 올해는 어린이 3백50명(부산 2백명, 광주 1백50명)과 학부모 6백여명 등 모두 1천2백여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로 준비됐다.

그러나 규모에 비해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 이날 사고는 오후 2시로 예정된 도강(渡江)행사 직전에 발생했다. 하동군 악양면 악양마을 앞 강변공원에서 점심 식사를 일찍 끝낸 광주 YMCA 소속 아기 스포츠단 어린이 일곱명이 무더위를 참지 못하고 강에 뛰어들었다.

사고현장에는 강바닥이 깊게 파인 물 웅덩이가 많았고 이날 오전 내린 비로 강물이 불어났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YMCA측 안전요원.경찰.119구조대.학부모 등 어른 8백여명이 현장에 있었지만 점심 식사를 하느라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때였다. 구명조끼는 식사 후 나눠주기로 돼 있었고 식사 도중에는 안전요원 배치도 유보됐었다.

이날 오전 하동과 섬진강 상류지역에는 집중호우로 강물이 많이 불어났었다. 하동경찰서 관계자는 "주최측에 '행사를 강행하겠느냐' 고 물었는데 강행을 고집했다" 고 말했다.

행사 진행도 엉망이었다. 어린이 7명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데도 주최측의 대응은 거의 없었다. 위기관리 체계가 구축되지 않았던 것이다.

주최측 관계자들은 사고 직후 "본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어린이에 대한 보호책임은 부모에게 있고 사고장소도 통제선 밖이었다" 며 이해가 되지 않는 해명까지 내놓았다.

1백70명이나 동원됐던 안전요원이 점심식사 시간에 강변 등에 배치됐다면 과연 참사가 빚어졌을까? 또 행사 감독관청인 하동군과 경찰의 대응은 적절했을까?

"어른들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행사에 어린이까지 동원되는 일이 언제까지 반복돼야 합니까?" 라는 한 유가족의 절규가 가슴에 와 닿았다.

비록 현재까지 마땅한 대안도 없고 당분간 이같은 이벤트가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만 말이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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