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같은 스릴러 '메멘토' 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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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 는 은근히 뭔가 특별한 영화를 바라는 관객들에게 금상첨화인 영화다.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영화를 조각 내 다시 편집한 것 같은 구성에 긴박감을 자아내는 스릴러의 묘미를 가미한 이 영화는 처음엔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영화의 성격을 읽어내는 순간, 누구든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 선보여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선댄스.도빌.시체스 카탈로니아 영화제 등을 돌며 각본상.관객상 등을 받았고 세계적인 영화 정보사이트 IMDB(http://www.imdb.com)에선 네티즌들로부터 평점 8.9(10점 만점)를 받아 '와호장룡' '식스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걸작들을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올 3월 미국에선 단 11개 극장에서 개봉했다가 10주 후에 스크린 수를 5백여개로 늘리는 괴력을 발휘하면서 전미 박스오피스 8위까지 올랐다.

전직 보험수사관이었던 레너드(가이 피어스)는 뭣이든 10분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가 강간 당한 뒤 살해됐다는 것, 그리고 범인의 이름이 존 G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 기억도 메모를 통한 것이다. 범인을 추적하다 중요한 단서조차 잊어버리기 때문에 레너드는 메모에 집착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메모의 기억마저 헷갈리면서 사건은 복잡해진다. 대신 10분 이상의 기억력을 가진 관객들은 그 때부터 레너드가 만들어온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갈 수 있다.

한정된 기억력을 가진 주인공과 관객의 심리 상태를 비슷한 상황에 놓기 위해 영화의 시간을 거꾸로 전개하는 방법을 택했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하나씩 실체를 드러내는 진실들을 알아가자면 마치 영화를 본다기보다 퍼즐 게임을 즐기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LA 컨피덴셜' 에서 처세술에 능한 엑슬리 경사로 나왔던 가이 피어스는 이 영화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기파 배우가 됐고, 이 영화가 두번째 연출작인 서른 살의 놀란 감독은 지금 알 파치노.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불면증' (Insomnia)이란 영화를 찍고 있다.

매력적인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보통 영화를 보듯 느긋한 마음으로 좌석에 앉았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첫 단락의 첫 장면이 다음 단락에서 마지막 장면이 되고 두번째 단락의 첫 장면이 그 다음 단락에서는 다시 마지막 장면이 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씩 단서가 잡히는 만큼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며 장면을 잘 따라가야 한다.

그래서 두.세번은 봐야 가닥이 잡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인데 실제로 한 극장에선 두번 보러 오는 관객에게 입장료를 1천원 할인해줄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25일 개봉.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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