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갈팡질팡 주택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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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택 정책의 난맥상이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어제 세운 정책이 오늘 바뀌고, 다시 내일 달라져 서민들만 정책 피해자로 양산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발표한 주택 관련 정책은 지금까지 모두 22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두달이 멀다 하지 않고 쏟아내서는 그 효과가 의문시될 뿐 아니라 신뢰를 보내기도 어렵다.

최근에만 해도 건설교통부는 전세난이 사회 문제화하자 소형주택 의무 공급비율을 부활하되 이를 촉진하는 유인책의 하나로 소형 아파트의 분양가 자율화를 들고 나왔다.

분양가 자율화는 시장 기능의 회복이나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점에서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분양가를 풀면 전반적인 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저금리 속에 부동산 투기만 부추길 우려가 크다.

그러지 않아도 일반 아파트의 분양가를 자율화한 결과 공급자 위주의 주택 시장에서 건설업자들이 일방적으로 가격 상승을 주도해 자율화 이전보다 분양가를 40%나 올려 놓았다.

준농림지 대책도 마찬가지여서 1998년 토지 공급 확대를 위해 토지 이용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이후 용인의 마구잡이 개발 등이 사회문제화하자 지난해 정책을 다시 급선회해 지금은 수도권 택지 공급 부족이 걱정거리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택 정책이 이처럼 난맥을 보이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단기 대응에 급급한 까닭이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는 경기 회복은 해야겠고, 제한된 수단에 건설 부양에 매달리다 보니 이런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임기응변식 건설업자 우선의 대응은 일시적 일감은 제공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주택건설업계에도 구조조정을 지연시켜 체질 개선을 어렵게 할 뿐이다.

한번 결정된 정책을 상황의 변화없이 정치적 이유로 변경하거나 추진 중인 정책을 성과도 보기 전에 작은 부작용이 나타났다고 중단해서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정책의 일관성을 이루기도 어렵다. 주택 건설에는 경기 대응적 측면이 분명히 있으나 더욱 중요한 게 주거 안정이다.

정확한 현실 진단에 바탕을 둔 장기적 주택 정책이 정말 아쉬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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