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4> “백 사단장, 평양을 맡으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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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20일 서울시내에 진입한 유엔군 장병이 시가전을 벌이면서 미처 퇴각하지 못한 적 잔당을 소탕하고 있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프랭크 밀번 미 1군단장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아주 다른 내 얼굴과 몸짓에서 뭔가를 읽은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평양으로 진격하는 대열에 내가 이끄는 국군 1사단이 빠져 있다. 1사단은 해주로 진격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밀번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 친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는 뜨악한 표정이었다.

“미군이 한국을 도와주고 있어서 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전쟁은 한국에서 벌어진 싸움이다. 그 싸움을 걸어온 북한군과 지금까지 격전을 벌이고 북진하는 중이다. 적의 수도를 치려고 나서는데 왜 국군을 빼놓은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국군 1사단의 진격로를 수정해 줄 수 없느냐”는 내용으로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밀번의 얼굴에는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작전계획을 바꾸라니-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인가’라는 기색이었다.

200쪽에 가까운 작전계획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대가 작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세부 계획이 빈틈없이 꽉 짜여 있는 게 작전계획이다. 병력 이동과 화력(火力) 지원, 통신과 수송, 이를 모두 뒷받침하는 보급과 전투근무지원이 잔뜩 맞물려 있는 치밀하고 복잡한 작전명령서다. 빨리 진격해야 하는 마당에 이미 짜놓은 작전계획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군단 전체의 작전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내가 부리는 ‘오기’가 분명히 못마땅했을 것이었지만 밀번 군단장은 역시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불과 5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청(淸)나라와 일본이 전쟁을 벌였다. 그때 청이 진주했던 평양성을 일본이 성공적으로 공격한 일이 있다. 나는 그 역사를 잘 안다. 평양성을 공격하던 일본 군대의 공략법을 연구했다. 꼭 그것이 맞아떨어질 수는 없지만 그때의 상황과 지금이 매우 비슷하다.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느덧 역사 얘기까지 꺼내고 있었다.

나는 당시 일본군의 공략법을 지루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했다. 밀번 군단장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없었다. 깊은 침묵으로 젊은 내가 펼치는 열변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나는 평양에서 어린 시절 자랐다. 대동강의 어느 지역이 깊고 얕은지 모두 알고 있다. 그 대동강은 내가 동생과 함께 뒹굴면서 자란 곳이다. 누구보다 그곳을 잘 알고….” 나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 잘 알 수 없다.

고향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쳤을지 모른다. 뜨거운 눈물이 눈가를 적시는가 싶더니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러나 말이 잘 나오지를 않았다. “군단장님, 꼭 우리 한국군을 선봉에 서게 해 달라….” 내가 간신히 말을 끝냈다.

아주 깊은 침묵이 밀번 군단장과 나 사이에 흘렀다. 꽤 오랜 침묵이었다. 밀번 군단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백 사단장, 평양에 정말 잘 갈 수 있느냐. 기동력이 미군에 비해 한참 떨어질 텐데 해 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밀번은 이어 “1사단에 차량이 몇 대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100여 대가 있다”고 했다. 그러자 밀번 군단장은 “미 1기병사단에는 차량이 1000대나 있는데, 어떻게 미군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즉각 대답했다. “차량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장병들이 주야(晝夜)로 걷고 또 걸으면 반드시 먼저 평양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밀번 군단장은 눈을 내리 깔고 뭔가를 한참 생각하는 듯했다. 그가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옆에 놓인 전화기 앞으로 그가 다가갔다. 전화통을 집어 든 밀번 군단장은 “밴 브런트 참모장, 처치 장군의 24사단과 백선엽 장군의 국군 1사단 전투구역을 맞바꿔라”고 단호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전화기를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살짝 웃는 모습이었다. ‘이 젊은 놈이 고집 한 번 대단하군’이라는 속내를 담은 듯했다. 친근한 웃음이었다.

밀번 군단장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잘 해 봐라. 믿고서 지켜 보겠다”면서 내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나는 그때서야 인사를 차렸다. “군단장님, 정말 감사하다.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밀번 군단장은 “참모장에게 말을 했으니 작전계획을 수정할 것이다. 다시 찾아가 보라”고 말을 건넸다. 나는 그의 지휘차량을 나왔다. 뛰는 걸음으로 충북도청 청사 2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밴 브런트 참모장은 벌써 작업에 착수했다. 그가 문으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말했다. “수정하는 대로 보낼 테니 먼저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나가지 않았다. 밴 브런트에게 “다 수정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작업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작전계획서를 뒤적이는 참모장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군들은 참 이상하다. 명령이 내려지면 그에 철저하게 따르는 모습이 한결같았다. 그 엄청난 작업을 다시 해야 하면서도 그는 군소리를 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덧 그의 옆에 다가서 있는 상태였다. 그가 혹시 선을 잘못 긋는 것은 아닐까. 밴 브런트가 밀번 군단장의 지시사항을 충분히 알아들었을까. 이런 조바심으로 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백선엽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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