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가 위기 상황에 맞은 4·19혁명 50주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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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는 역사의 전환점마다 항상 젊은이들에게 빚을 지고, 그들의 희생으로 고비를 넘겨 왔다. 50년 전 오늘, 젊디젊은 대학생·고교생들이 독재정권에 항거해 분연히 들고 일어났다. 길거리는 학생들이 흘린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그러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4·19혁명은 단순히 일개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화를 향한 국민적 염원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횃불로 작동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186명의 사망자와 6000여 명의 부상자를 낳은 4·19혁명에서 기원(起源)한다.

그러나 4·19혁명은 역대 권위주의 정권에서 ‘의거’로 불리고 1980년의 제5공화국 헌법 전문에서는 명칭 자체가 빠지는 수난도 겪었다. 오랫동안 경원시(敬遠視)되던 4·19가 김영삼 정부 시절 ‘혁명’으로 새롭게 규정되고 수유리 희생자 묘역이 국립묘지로 격상된 것은 역사의 순리에 해당한다. 올 들어 4·19혁명에 앞서 일어난 마산 3·15 의거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새삼 순국선열들의 영전에 머리 숙여 묵념한다.

올해 4·19혁명 기념일은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46명의 군인들이 순국한 국가적인 비극의 와중에 찾아왔다. 비상한 위기상황에 맞이하는 4·19 기념일이므로 더욱 의미가 각별하다. 천안함 장병 대부분은 4·19 당시 희생자 또래의 젊은 나이다. 그들은 신성한 국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참사를 당했다. 대한민국은 또 한번 젊은이들의 희생에 빚을 졌다. 우리는 4·19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전제조건인 국체(國體)의 유지, 즉 국가 안전보장의 가치도 이번 기회에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이 건국 이후 민주화·산업화를 이루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4·19 이전에도 일신을 초개(草芥)같이 여기며 독립운동에 매진한 선열들이 있었고, 공산세력의 남침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무수한 희생이 있었다. 올해는 4·19혁명 50주년 외에 한·일 강제합병 100주년, 6·25전쟁 60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다. 산업화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 개통, 포항제철공장 기공식도 40주년을 맞았다. 건국과 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비극과 갈등이 벌어졌지만, 우리는 결국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국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남은 과제는 선대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딛고 선 땅은 아직 지반이 취약하다는 것이 천안함 사건으로 여실히 증명됐다. 안보가 튼튼한 나라, 민주주의가 꽃피는 나라,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 등 행복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조건들 중 어느 하나에만 무게를 두는 것은 선열들 모두를 모독하는 일이다. 50주년을 맞이한 4·19 혁명일은 공기처럼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던 두 중요한 가치, 민주주의와 안보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