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공포만화 한 편이 아쉬운 계절이다. 슬래셔 무비처럼 닥치는 대로 찌르고 자르는 것도 무섭지만, 심리 묘사만으로도 등골에 식은 땀이 흐른다면 일단 성공이다.
전생의 업과 퇴마를 주제로 한 두 중견 여성 작가의 만화로 열대야를 넘겨보자.
강경옥의 『두 사람이다』1~4권(시공사.각 3천5백원)과 이정애의 『사일런트 리밋』1권(코믹스투데이.3천5백원)이다.
『두 사람이다』는 설정부터가 으스스하다. 조선시대 한 사대부 집안이 액땜을 하겠다고 승천 하루 전날 이무기를 죽인다.
원한 품은 이무기의 저주로 이 집안의 자손들은 대대로 한 사람씩 의문사를 당하는데, 범인은 피해자의 주변 사람 두 명이다. 살해자는 밝혀지지만, 교사자인 한 명은 끝내 정체를 알 수 없다.
언니의 결혼식 전날 언니를 실족사하게 하는 동생, 횡단보도 앞에서 아내를 밀어 교통사고로 숨지게 한 남편 등 비극이 잇따른다.
최후의 순간까지 가족과 친구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전생.최면술.예지력 등 비현실적인 요소와 어색하지 않게 얽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주인공들을 둘러싼 삼각.사각 관계는 그중 한 명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름에 따라 하이틴 로맨스같은 경쾌함보다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의문 부호로 작용한다. 순정만화의 그림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읽어볼 만한 수작이다.
『사일런트 리밋』은 그야말로 '퇴마록' 이다.
재벌집 아들의 몸 속에 아수라가 침투한다. 법력이 높은 승려와 대결을 벌이다 도망간 이 '아수라 소년' 은 우연히 학계에서도 서자 취급을 받는 신경정신과 의사와 만난다.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려는 의사와 정신분열증을 일으킨 소년은 인간 세계를 구하기 위해 귀신들을 쫓는 퇴마사와 맞서게 된다.
이혼 후 헤어진 아들의 모습을 소년에게서 발견하는 의사를 통해 동성애 코드를 살짝 가미했다. 아직 1권이라 윤곽이 분명하진 않지만 고만고만한 학원물이 주류인 요즘 독특한 스타일만큼은 인정받을 만한 작품이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