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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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1장 붉은 갑옷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오다가 혜림사에 숨어 있는 세 사람의 원수 때문에 잔인하게 불을 질러 절을 태웠다는 것이지만 숨겨진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당시 혜림사의 주지는 유명한 선승 가이센 스님이었다.

원 이름은 가이센 쇼키(快川紹喜)로 미노(美濃)출신의 뛰어난 고승이었는데 다케다 신겐은 일찍부터 그의 소문을 듣고 자신의 영토 내에 있는 혜림사의 주지로 가이센을 초빙하여 예를 다하여 정신적 지도자로 모신 것이었다. 살아 생전에 다케다와 가이센은 서로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친구이기도 했었다.

다케다는 자신이 직접 가이센에게 기산(機山)이란 호를 하사하기도 했고, 무소(夢窓)국사가 창건한 명찰에 사령(寺領) 5백명을 상주케 함으로써 극진하게 가이센을 대우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가쓰요리가 자살함으로써 완전히 멸문한 혜림사로 뜻밖의 세 사람이 숨어든 것이었다.

가쓰요리의 수급(首級)을 보자 자신과 20년간 원수지간이었던 다케다 가문을 완전히 멸망시킨 후 기쁨에 젖어 있던 오다는 그 즉시 가쓰요리의 수급으로 술잔을 만들 것을 명하였다.

적의 목을 베어 그 해골에 술잔을 만드는 것은 오다의 특별한 취미이기도 하였다. 해골에 검은 옻칠을 하고 갈라진 틈은 황금으로 메워 술잔을 만들어 곁에 두고 보면서 '전장에서 쓰러져 적에게 목이 잘려 죽는 것이 무사의 진정한 삶' 임을 되새겨보고, 그 해골에 술을 따라 마시고 취함으로써 '인생이란 꿈같이 지나는 허무한 것' 임을 되새겨보는 유별난 취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기쁨도 잠시, 혜림사의 사찰로 세 사람의 무사가 숨어들었다는 정보를 받아들었던 오다는 불과 같이 대노하였다. 혜림사로 숨어든 사람은 롯카쿠 요시스케(六角義弼), 야마토 아와지가미(大和淡路守)와 승려 조후쿠인(上福院) 이렇게 세 사람이었다.

특히 오다는 롯카쿠에 대해서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원래 롯카쿠는 오미(近江)지방의 명문 호족으로 오다에게 가문이 망하자 다케다 가문에 기탁하여 반(反)노부나가 동맹 추진에 앞장서고 있던 대원수였던 것이었다.

오다는 혜림사의 주지 가이센에게 사찰 안에 숨겨주고 있는 세 사람의 인도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가이센은 일언지하로 이를 거절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가이센은 세번이나 사자를 보낸 오다의 설득을 끝까지 거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오다는 자신이 가장 총애하던 낭인 출신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를 보내었으나 오히려 가이센은 숨어들었던 세 사람을 몰래 절 밖으로 도망치게까지 했던 것이다. 미쓰히데로부터 보고를 받은 오다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이 직접 혜림사로 달려가 불을 질렀다.

남은 다케다의 일족들을 모두 혜림사에 모이게 한 후 다케다 가문의 씨신이었던 신라사부로의 신상에 불을 지름으로써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연출하였던 것이다.

이때 가이센 스님은 선상(禪床)위에 앉아서 손으로 금강인을 지은 채 타오르는 불에도 꼼짝도 하지 않고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소신공양(燒身供養)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분신하기 전에 법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서 마지막 게송(偈頌)을 읊었다고 하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그 유명한 게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훌륭한 선(禪)은 반드시 산과 물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마음자리(心頭)가 적멸(寂滅)에 이르면 불(火) 스스로 시원하거늘" .

글= 최인호

그림= 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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