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정서 결핍 시대의 황량한 자화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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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의 경우 주로 반미·촛불시위·4대강 반대·종북주의 등으로 표출된다. 반미운동은 효순·미선양 사태를 기점으로 운동권 구호에서 대중운동으로 방향을 잡았고, 얼마 전 촛불시위로 나타났다. 선의로 보자면 사회다원화를 반영하는 움직임이고, 해방 이후 현대사와 주류사회 흐름에 대한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다. 거기까지는 좋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젊은층을 사로잡은 지 20여 년, 문화투쟁은 우리법연구회라는 법조 내 조직, 전교조, 일부 방송·신문·포털 등 사회 각 부분에 두루 자리를 잡았다.

최선의 경우 이 세력이 사회의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 공간을 통해 확산되며 젊은층에게 공격적 심리내지 사회적 분노를 촉발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왕년의 좌파 논리가 주변부화되고 파편화된 형태의 대중심리로 바뀐 것이다. 이제 그게 한국인의 일상이 됐다. 각종 문화상품의 양념이라서 이를테면 영화 ‘웰컴 투 동막골’ ‘괴물’에 묻어있는 반미 정서로 나타난다. 좌파를 자처하는 개그맨의 존재도 그렇다. 그런 공격적 정서는 반기업 정서, 공권력 비판으로도 표출된다.

반기업 정서는 특정 대기업 오너에 대한 공격만이 아니다.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중·고교 교과서에 숨겨진 암초(중앙일보 3월26일자 E1~3면)이자 정당한 부(富)에 대한 거부 심리다. 인류사의 첫 아나키스트 프루동의 말대로 “재산은 도둑질이다”는 식이다. 그와 함께 공권력·주류사회에 대한 분노는 SBS의 ‘검찰청 삽질 로고’, 유인촌 문화부장관을 욕보이려는 ‘회피 연아’ 동영상 등에서도 엿보인다. 그게 과연 약자에 대한 배려이자 사회적 정의일까? 인터넷에 지천인 그런 공격심리와 사회적 분노는 2010년 봄 현재 한국인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있는 핵심 요인이 아닐까?

심지어 10대까지도 인터넷 공간에서 대통령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르고 모욕한다. 통제 불능의 이런 상황에서 문화입국을 말하고, 국격(國格)·한국 브랜드를 논하는 게 말이 안 된다.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한국인은 정부를 괴물로 생각한다”고 했지만, 진짜 괴물은 언터처블의 이상 정서다. 반문화주의·몰(沒)지성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그 이상 정서란 결국 우리의 그림자이자, 우리의 일부다. 누구를 향해 손가락질할 수 없다. 좌우로 편을 나누기 전에 그 안의 비판적 정신은 살리면서, 방향을 잃은 공격성과 분노는 가라앉혀야 한다. 그게 사회통합의 치유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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