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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실상사 스님들 총무원 간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조계종 총무원 청사에 말 그대로 피골(皮骨)이 상접한 승려 다섯명이 나타났다. 삼칠일(21일) 단식기도를 마친 지리산 실상사 승려들이다.

단식은 마쳤지만 아직 곡기를 삼키지는 못한다. 끼니를 대신하는 감잎차를 담은 물병 하나씩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에서 기운이라곤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굳은 표정에도 눈동자는 빛났다.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이 방문취지와 경과를 설명했다.

"청동대불 건립에 반대한다는 글을 기고한 수경 스님의 처소를 해인사 스님들이 묻길래 제가 일러주었습니다. 그런데 흥분한 스님들이 문짝을 부수더군요. 말리다간 같이 흥분할 것 같아 그냥 지켜봤습니다. "

한달여 전 해인사 스님들이 실상사를 부수던 일을 조용히, 그리고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 분노를 삭이기 위해, 또 그같은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단식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그리고 단식을 하면서 논의한 결과, 폭력근절을 위한 교육과 법.제도적 장치 강화를 건의하기위해 총무원을 찾은 것이다.

사실 이들 실상사 승려들은 단식을 마친 지난달 25일 쓰러질듯한 몸을 이끌고 서울까지 도보행진을 하겠다는 '죽을 결심' 을 했었다.

마침 총무원장이 휴가 중이라 상경해도 만날 수 없었고, 주변에서도 극구 만류해 도보행진은 포기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알기에 조계종의 행정책임자인 총무원장, 입법책임자인 종회의장, 사법책임자인 호계원장이 모두 총무원장 집무실에 모여 이들을 맞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스님들의 뜻대로 폭력을 근절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 (총무원장)

"종단의 미래를 위해 생명을 걸고 단식한 스님들의 뜻이 꼭 관철되도록 해야겠습니다. " (호계원장)

"스님들의 노력이 보람 있도록 이번 9월 종회에서 심각하게 토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종회의장)

조계종을 이끌어가는 행정.사법.입법의 수장들이 한 목소리로 실상사 승려들을 위로했다. 실상사 승려들의 주장처럼 이제 폭력문제는 해인사 선방 승려 일부의 문제가 아니다. 공은 해인사에서 실상사를 거쳐 총무원으로 넘어왔다. 대불사건의 추문이 불교계 발전이라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이제 총무원에 달렸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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