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폐증, 편견부터 버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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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폐(自閉)아동을 둔 가족의 비극이 본지의 특별기획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현실에서 암이나 뇌졸중도 아닌 자폐증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자폐증에 대한 무지와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편견이 관여하고 있다.

아직도 자폐증을 드물게 발생하며 단지 말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해 지내는 내성적인 성격장애의 하나로 가볍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오히려 자폐환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레인맨' 을 통해 뛰어난 암기력과 계산력 등 천재성이 돋보이는 질환으로 희화화(戱畵化)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자폐증은 현대의학조차 원인을 잘 모르며 뾰족한 완치수단도 없는 난치병이다. 망상이나 환각에 시달리는 정신분열병보다 치료가 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환자도 국내에만 3만~4만명에 달할 정도로 드물지 않은 질환이다.

그러나 부모와의 눈맞춤조차 거부하고 평생 유리벽에 갇힌 채 살아가는 자폐증 환자의 부양은 이번 기획을 통해 보듯 전적으로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이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으며 검증되지 않은 치료를 찾아 헤매다 자포자기하기 일쑤다.

이들을 부양하느라 생활고에 찌든 나머지 가정파탄에까지 이른 가족도 부지기수다. 자폐 자녀를 두고 먼저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부모들의 고백에서 이들이 받는 고통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폐증을 체계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무하다시피 한 형편이다. 자폐아를 위한 복지시설은 대부분 사설기관에 맡겨진 상태며 정부가 운영하는 장애인복지관 중 자폐 전용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 질환에 대해 우리 사회가 무관심한 것은 복지국가를 꿈꾸는 우리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자폐증은 부끄러운 질환이 아니며 단지 그들만의 운명 탓으로 돌려서도 안된다.

누구도 자폐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자폐증으로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직.간접적인 비용도 암이나 뇌졸중 못지않게 많다.

자폐증은 대물림되는 유전병도 아니며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탓도 아니다. 지금이라도 자폐증 극복을 위한 국가적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자폐증은 난치병의 하나일 뿐 불치병이 아니다. 세살 이전에 일찍 발견해 재활치료를 시작하면 정상인에 가까운 독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자폐증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책 마련은 시급한 과제다. 치료 시기를 놓친 자폐환자에게 소요돼야 할 비용은 자폐아동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해 투입되는 비용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특수학교와 재활기관을 설립하고 전문교육 요원을 양성해 자폐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자폐환자 가족과 전문가들이 참여해 올바른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자조모임의 결성도 지원해야 한다.

또 내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자폐아동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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