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세이 예스' 박중훈 연기에 오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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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여행을 떠난 부부 윤희(추상미)와 정현(김주혁) 앞에 정체 불명의 남자 M(박중훈)이 나타난다.

거친 말투와 행동으로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M. 그에게 분개한 정현이 주먹을 휘둘러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M은 합의 조건으로 사흘간의 동반 여행을 제안한다.

'세이 예스' 에는 두 가지의 관람 포인트가 있다. '찰리의 진실' (조너선 드미 감독)로 할리우드 주류 무대에 입성한 박중훈이 프랑스 촬영 후 국내 관객과 첫인사를 나누는 작품이다. 능청맞게 '씨익-' 하고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그가 잔혹한 살인마로 '돌변'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심을 끈다.

한국 스릴러의 개척자로 불리는 김성홍 감독의 우직한 고집이 빚어낼 성과에도 시선이 몰린다. '손톱' '올가미' '신장개업' 등 국내 감독 중 유일하게 스릴러를 탐구하고 있는 그의 두둑한 배짱이 무슨 일을 벌였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세이 예스' 는 무심코 길을 가다 마주친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고 그 악연이 끝없이 이어져 파멸로 이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지 "니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라고 말하며 행복한 부부에게 칼을 들이대는 M. 자기를 무시했다는 이유 하나로 성공한 여고 동창생의 삶을 짓밟기 시작하는 '손톱' 의 혜란이나, 질투심으로 며느리에게 느닷 없는 폭행을 가하는 '올가미' 의 시어머니 진수와 유사한 캐릭터다.

부패한 사회가 낳은 이유 없는 폭력을 까발려 보려는 감독의 의도다. 김감독은 스릴러의 기본 조건인 긴장의 유지와 증폭을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는 솜씨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번엔 '흥행 성공' 혹은 '더 강한 인상 남기기' 등의 욕심이 앞섰던 것일까. 스릴러 본연의 재미에 비교적 충실했던 전작들보다 볼거리 위주의 액션에 많은 공을 들인 까닭인지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가 치밀하지 못하고 줄거리의 개연성도 비틀거린다.

예컨대 감독은 "한층 높은 공포감을 위해 M이 어떤 인물인지를 일부러 감췄다" 고 말하지만 관객들은 살인이 일어나는 이유를 끝내 알지 못해 작품에서 소외되는 것 같다.

그래도 박중훈의 살인마 연기는 개성 있다. 극도로 심각한 상황에서도 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몇 대목은 그가 아니면 소화하기가 어려운 장면이다.

'접속' 이후 오랜만에 영화에 나온 추상미와 신인 김주혁이 발산하는 땀냄새도 물씬하다. 다만 배우의 연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시나리오가 다소 성기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18세 이상 관람가. 18일 개봉.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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