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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저질 논쟁 걷어치워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 정치문화가 건전한 토론과는 거리가 멀지만 요즘은 더욱 말꼬리 잡기식의 비방에만 골몰하는 모습이다.

그런 말싸움의 한복판에 있는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정책위의장이 현 정부의 노동.소득 분배 정책, 주5일 근무제 등을 들어 '낡은 사회주의에다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정책을 남발한다' 고 비난하자 민주당은 "복지정책을 낡은 사회주의라고 하는 한나라당은 특권층 정당" "金의장은 붉은색만 보는 색맹환자" 라고 반박했다.

'포퓰리즘이 적절한 지적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사회복지정책의 대안은 무엇인가' 라는 점들은 정치권에서 정색을 하고 논의할 만한데 그런 분위기는 좀처럼 잡기가 힘들다. 곧바로 '정책 색깔론' 공방이 벌어질 만큼 여야간 감정의 골이 깊이 파여 있다.

이미 대북정책.언론사 세무조사 등 국정 현안 논란에서 보듯 진지한 논쟁은 사라지고 말꼬리를 잡는 게 습관이 돼버렸다. 여기에다 '개혁 대 반개혁' '좌냐, 우냐' '진보냐, 수구냐' 하면서 상투적인 2분법으로 서로를 몰아세우고 있어 정치권의 분열양상이 걱정스럽다.

여기에는 사안의 본질에 충실하기보다 무언가 원색적이고 험악한 표현을 곁들여 상대당의 이미지에 상처를 줘야 정치적 이윤이 돌아온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金의장의 "DJ정책은 의사 대신 정육점 주인이 심장수술 한 것 같다" 는 비아냥은 상대방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金의장이 말만 하면 민주당 당직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반박하는 것은 무언가 충성경쟁을 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이런 상황에서 민생을 의식하고 경제회복을 다지는 짜임새있는 정책을 기대하기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더구나 당의 입이라는 대변인들이 대리전을 펼치듯 벌이는 언쟁을 넘어, 요즘은 최고위원.부총재 등 각당 지도부까지 말싸움 경연장에 나서고 있어 정치풍토가 더욱 삭막해지고 있다. 상대당 총재의 오래 전 행적, 집안을 들추며 무슨 주요한 비리라도 캔듯이 떠들고 있으니 한심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대상으로 한 때아닌 친일논쟁이 그런 사례다. 민주당은 "李총재 부친이 일제 말기에 검찰서기를 했다면 독립투사를 탄압했을 것" 이라고 사실상 친일파로 규정하고, 당보에선 李총재를 컴퓨터 바이러스로 비유했다.

여기에 맞서 한나라당은 "金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고교시절 일본인 담임에게 전화로 '선생님, 도요타(豊田)입니다' 라고 창씨개명한 이름을 썼다" 는 일본신문 보도를 들어 金대통령을 존일(尊日)파로 비난했다. 이런 근거없는 매도와 소모적인 비방에 국민이 신물을 내는 것을 아는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이런 장면들로 인해 대립과 이념 갈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극언과 저질의 정치는 우리 사회와 여론을 우리편, 네편의 양극으로 나누는 치명적 폐해를 준다.

여야 모두 말로만 정쟁(政爭)을 중단할 것이 아니라 이런 대치를 마감할 수 있는 무슨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여야 지도부 사이에서 거론되는 TV 정책토론도 진흙탕 논쟁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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