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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혁과 동떨어진 정부산하기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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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 산하기관의 방만한 운영은 비단 어제 오늘의 고질(痼疾)이 아니다. 문제는 잦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선되기는커녕 그 행태가 마냥 제자리라는 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전경련이 어제 내놓은 '정부 산하기관 어떻게 운영되나' 라는 보고서는 이들 기관의 문제를 짚어내고 개혁을 재촉구했다는 데서 의미가 각별하다.

정부 산하기관과 산하단체는 정부조직법상 행정기관은 아니나 공공 목적의 사업을 수행한다는 면에서 엄연한 준공공기관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그 중요성에 비해 회색지대가 여전히 존재하고 그만큼 경영의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직접 투자한 투자기관들은 몰라도 특히 아래로 내려가 조합.협회.공단 등 각종 이름의 산하단체들은 정부 업무를 위임받고도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황 자료라고 해야 현 정부의 출범 전 대통령직인수위가 1998년 밝힌 것뿐으로 1백91개 기관에 종사자는 6만5천명에 달한다.

이들 기관은 여기에 각종 특별법에 의해 설립돼 민간기업은 아예 발붙이기 어렵게 진입 장벽을 치고 온존해 왔다. 경쟁을 부추겨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들을 감싸안고 돎으로써 국민에 대한 질 좋고 값싼 서비스를 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산도 분담금.부담금 등의 명목으로 상당 부문을 일반에 의존해 전경련에 따르면 기업들의 연간 부담이 99년만 해도 6천억원에 이르렀다니 놀랍기만 하다. 더군다나 정부가 지난해 보조금과 출연금 명목으로 산하기관에 지원한 돈도 11조원으로 정부 예산의 12%에 이르고 있다.

물론 정부 산하기관도 주어진 제 기능과 역할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조직이란 상황이 변하면 기능과 역할을 재점검하는 게 당연하고 그것이 정부의 책무이기도 하다. 시대 변화로 불필요한 조직은 잘라내고 차제에 중복 업무 등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각종 규제에 묶여 투자 부진 등 기업 활동이 저조한 판에 산하기관들마저 규제의 장벽에 편승해 기업의 의욕을 꺾어서는 곤란하다. 정부의 공기업 개혁은 그간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기업 활동과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부 산하기관의 개혁 없이는 정부 개혁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동안의 공공부문 구조조정이 인원과 기관의 수를 줄이는 외형적 효과에 치중, 구조조정의 본질 사항인 산하기관의 기능 중복 해소나 민간과의 경쟁부문 조정 등은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산하기관들로선 지속적인 경영 혁신을 통해 각종 부담금이나 위탁 수수료.회비 등을 정비해 민간의 준조세성 부담을 덜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산하기관별로 기능.예산.재원 조성 등을 주무 부처가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 산하기관의 종합적인 관리.감독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 산하기관 관리기본법을 제정하자는 전경련의 권고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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