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타협의 명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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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3보 (36~52)]
黑. 최철한 9단 白.구리 7단

지난 6일 부안에서 열린 이창호9단 대 박영훈9단의 LG정유배 결승전에서 이창호가 오후 8시까지 가는 혈전 끝에 3-0으로 승리, 생애 통산 120승을 달성했다.

그런데 이날의 대국 사진을 본 네티즌들이 일반 기원만도 못한 딱딱한 의자에 이창호를 10시간씩 앉혀 놓을 수 있느냐며 항의를 쏟아냈다. 외교관 100명보다 나은 이창호를 왜 소중히 여기지 못하느냐, 중국은 '세계 제일인'이라 해 경호원까지 붙이며 국빈대우를 하는데, 안방에서 그토록 홀대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흥분했다. 한국기원은 결국 홈페이지의 해명서를 통해 정중히 사과하고, 호텔시설이 없는 부안 현지 사정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했다.

이창호는 의자나 대국시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일인자의 티를 내기는 고사하고 누구나 할 만한 불평조차 하지 않는 이창호. 그를 대신해 네티즌들이 나선 것이 이채로웠다.

백은 호시탐탐 패의 기회를 노렸으나 흑의 최철한9단은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구리7단에게도 준비해 둔 마지막 해결책이 있다. 36으로 끊은 다음 38로 되모는 수(39는 정수며 '참고도' 흑1은 A, B가 맞보기여서 안 된다).

본시 이 코스는 흑이 원하는 것이었다. 백이 기세등등 초강경으로 밀어붙일 때 원했던 그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타협해야 한다.

백△ 한 점이 폐석으로 변한 것은 쓰라리다. 그러나 구리는 흑▲를 고립시켰다는 것으로 후퇴의 명분을 삼으며 44까지 삶을 도모하고 나섰다(41=◎의 곳 이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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