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선우 '깊은 산속 옹달샘'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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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먼 뱃길 선유도 민박 든 뱃사람집 뱃사람은 없고,

쪽마루 천장에 알전구 말간 밤이었네 팔월이었고,

마당에 모깃불 지펴놓고 쪽마루에 나와 앉은, 아직 젊어 입술이 유도화 같은 섬여자가, 그을린 이마 무색토록 희게 드러난 왼쪽 젖을 아이에게 물리고, 무릎에는 눈썹이 까만 네살배기 아이를 누이고, 느리게 느리게 자장가를 부르는 밤이었네

깊은 산속/옹달샘/누가 와서 먹나요/새벽에 토끼가/눈 비비고 일어나/세수하러 왔다가/물만 먹고 가지요

바지락밭에서 노래에 취하던 홀시어머니

이른 밤잠에 시든 몸을 기대어보려 하네

문지방 곁엔 한되들이 백화수복 병하나 찰방이는 밀물 위에 끄덕끄덕 조올고,

-김선우(1970~) '깊은 산속 옹달샘' 중

폐일언하고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 미처 인용하지 못한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은근히 자기 두 귀를 만져본다. 그 사이 혹 토끼가 되었나 하고.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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