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데이비드 코 IMF소장의 충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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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난 20개월 동안 한국경제를 가까이서 지켜본 데이비드 코 IMF 서울사무소장(사진)이 한국인과 한국경제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토해냈다. 지난 24일 한국은행에서 가진 고별 강연 자리에서다.

코 소장은 우선 한국인들이 주위 상황에 너무 성급하게 반응하는 '냄비 근성' 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사람들은 외환 위기를 겪어서 그런지 위기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쓴다. 최근 경기 침체가 세계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위기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고 지적했다.

경기란 원래 오르고 내리는 사이클을 갖고 있는데 한국인들은 너무 위기감만 부각하고 있다는 것. 구조 개혁도 장기간에 이뤄지는 과제인데도 한국인들은 단기간에 끝내려 한다고 코 소장은 비판했다.

그는 또 "한국인들은 일단 국가 목표가 정해지면 88올림픽이나 외환위기 직후 '금 모으기' 운동 처럼 강력한 저력을 발휘하지만, 노사문제처럼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엔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고 지적했다. 코 소장은 요즘엔 한국인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너무 냉소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코 소장은 이어 "한국인들은 세계화의 혜택을 많이 보면서도 외국기업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모순된 모습을 자주 보인다" 며 한국인들의 이중적인 행태를 꼬집기도 했다.

최근 중국 경제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도 가격 경쟁력 관점에서만 비교해 중국에 추월당할 게 뻔하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생산성 측면에서 찬찬히 따져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도 문제삼았다. "한국 언론의 보도는 너무 피상적" 이라며 "독자들에게 정보가 될만한 심층보도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 고 충고했다.

코 소장은 또 "폭탄주로 상징되는 한국의 음주 문화는 독특하다" 며 "같이 술 마시는 사람들끼리 끈끈한 정을 나누게 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같은 장점을 즐길 자신이 없다" 고 말해 청중을 웃겼다.

1999년 말 한국에 부임한 데이비드 코 소장은 27일 한국을 떠나 미국 워싱턴에 있는 IMF 본부로 복귀한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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