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오픈] 듀발 '만년 2인자' 아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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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데이비드 듀발(30.미국)은 마지막 18번홀에서 불과 2m짜리 버디 퍼팅을 놓쳤다. 그러나 그는 탄식 대신 미소를 지었다. 갤러리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새 챔피언을 환영했다.

버디가 아니더라도 이미 3타차 우승을 확정지은 듀발은 간단히 파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안경을 벗었다. 선글라스 뒤에 숨은 그의 눈은 뜻밖에 감정을 드러냈다. 눈시울이 금세 붉게 물들었다.

듀발이 '만년 2인자' 의 굴레를 벗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3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즈 골프장(파71.6천2백15m)에서 끝난 제1백30회 브리티시 오픈 골프대회(총상금 4백94만달러) 4라운드는 예상대로 듀발의 챔피언 즉위를 축하하는 자리가 됐다.

듀발은 지난 4월 올해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에서 최종일 부진으로 2위에 그쳤다.

1993년 프로에 입문, 그동안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에서 12승을 올렸으나 유난히 큰 대회에 약했다. 특히 4년 연하인 타이거 우즈(26.미국)의 승승장구 드라마를 도와주는 '들러리' 역할은 그의 자존심을 있는대로 짓뭉갰다.

지난해 부상까지 겹쳐 최근 15개월간은 무관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 기간의 와신상담이 그를 단련시켰다. 3라운드 선두로 나선 지난 22일 그는 "2위는 패배와 다름없다" 고 선언했다.

4라운드 전반 듀발이 보기 없이 3, 6, 7번홀에서 버디를 추가했을 때 그는 이미 2위 그룹에 2타 앞섰다. 전날 공동 선두인 베른하르트 랑거(독일)는 파 행진에 그쳤고, 이언 우스남(영국)은 초반 클럽 개수 규정 위반으로 인해 2벌타를 받았다.

듀발은 11번홀(파5) 벙커샷을 깃대 1m에 붙여 버디를 낚은 뒤 13번홀(파4)에서 버디를 추가했다. 12번홀(파3)에서 벙커에 빠지는 바람에 유일하게 보기를 범했다. 그는 이날 4언더파(버디 5개.보기 1개)를 쳐 합계 10언더파 2백74타를 기록, 2위 니클라스 파스트(29.스웨덴)와는 3타차로 승리했다.

듀발은 우승컵 클라렛 저그와 우승상금 60만파운드(약 11억1천7백만원)를 안았다. 순간 그는 세계 골프계의 제1인자로 공인됐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전리품은 우즈의 그늘에서 벗어나면서 되찾은 자존심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순은제 트로피 클라레 저그에는 그의 이름 '데이비드 듀발' 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임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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