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대학이 부러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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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학에 외국인 교수 바람이 일고 있다.

서울대는 내년부터 3년간 한해 1백명씩 뽑아들이고 고려대는 전체 전임교수의 17%를 외국인으로 충원하리라 한다. 서울대는 강단 만이 아니라 아예 총장 자리를 외부에 개방하겠다는 움직임이다. 경영 능력이 있으면 외국인이면 어떠냐는 의지가 대학 개혁안에 서려 있다.

***하버드 財政 무려 25조원

하버드대는 여름과 함께 새 총장을 맞았다. 3백년 된 대학의 27대 총장을 고르는데 후보가 자그마치 5백명이었다. 그 중에는 전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까지 들어 있었지만 뚜껑이 열리자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가 떴다.

서머스는 28세에 최연소 교수가 되고 40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주는, 노벨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수재 중의 수재다. 하지만 대학은 학생이 고객이다. 제 아무리 외국인 교수와 천재 총장을 꿔다 놓아도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이 덕을 보지 못하면 말짱 헛 일이다.

학생들은 총장이 바뀌는 데 별반 관심이 없다. 하버드에서도 새 총장보다 그들이 먹는 피자에 닭날개가 박힌 것이 더 큰 화제였다. 돈을 끌어모으느라 전화통에 매달려 있는 총장보다 찰스 엘리엇 같은 스승의 상(像)을 바랄 뿐이다. 엘리엇 총장은 과학과 문학을 가르치는 등 커리큘럼 혁명을 일으켜 20세기 대학의 모습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하지만 하버드가 학자풍이 아닌 경제관료 출신의 마당발을 새 총장으로 택한 것은 대학이 어디로 굴러가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미국의 대학총장은 마치 3D업종 같아서 공석(空席)이거나 구인광고 중인 대학이 1백개도 넘는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총장의 모금 능력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미국식 모금의 실상을 뜯어보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똑똑한 총장 한 개인을 모셔온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기업 뺨치는 '모금 머신' 이 따로 움직인다. 하버드만 해도 대학은 보스턴에 있고 회사는 뉴욕에 있다. 9천개가 넘는 기금을 굴리는 거대한 기업연합체다. 포브스 4백대 기업에 내 놓아도 6위권에 들 이익을 내 중역이 총장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다.

자식에게 공돈을 물려주지 않는 부자들의 유산이 대학으로 흘러드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금혜택과 헤지펀드도 마다 않는 공격적 자산 관리로 명문 대학의 재정은 폭발적으로 불어나고 있다. 1백90억달러(약 25조원)나 되는 하버드 재정은 웬만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만한 덩치다.

하버드대의 고민은 되레 돈이 너무 많은 데 있다. 지적 창조력이 이재(理財)를 따라가지 못하는 고뇌다. 아이디어의 열쇠로 돈을 꺼내 쓰지 못하고 곡간에 부(富)만 쌓는 탄식이다.

과거에는 연구비가 군색해 대학이 정부로부터 프로젝트를 따내 산학 협동으로 넘어갔지만 지금은 너도나도 벤처가 활로를 뚫는다. 기업도 대학과 겨루는 지적 경쟁자로 바뀐 것이다. 빌 게이츠가 일찌감치 하버드를 중퇴하지 않았다면 세계 제일부자가 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디지털 사일로' 같은 지식의 창고로는 대학이 살아날 수 없다. 총장이 모금을 위해 뛰기보다 어떻게 돈을 쓰느냐에 머리를 짜는 시대다. 후진국에 의과대학을 세워주는 대학도 있고 학비 융자 대신 학비 면제라는 교육 기부론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예일.스탠퍼드.코넬 등 28개의 명문 사립대 총장들은 우수한 학생보다 학자금이 필요한 학생을 도와주자는 데 합의했다. 우리 돈으로 한해 4천만원이 넘는 학비를 엄두도 못내는 학생들에게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학비 융자대신 면제 추진

과학 분야의 분발 및 학부 교육의 강화와 함께 다양성의 추구가 앞서가는 대학의 진로일 듯 싶다. 글로벌화와 마이너리티의 설 자리가 다양성의 두 기둥이다.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이것이 기회다.

곱절 비싼 외국인 교수를 불러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밖으로 눈을 돌려 널려있는 지적 자원에 목을 적시는 노력도 게을리할 수 없다.

유럽이 미국을 부러워하는 것이 딱 한가지 있다면 50만명에 이르는 외국 유학생이라 했다. 하지만 미국 유학 선두를 다투던 한국은 어느새 4위권으로 밀려났다. 중국세와 정보기술(IT)분야에 약진하고 있는 인도 유학생이 최근 13%나 는 때문이다.

수능시험을 안 보고도 옥스퍼드대에 붙는가 하면 내신 5등급 학생이 하버드에 버젓이 합격하는 한국 학생의 신화는 어디로 갔는가. 기회는 엉뚱한 꿈을 꾸는 두뇌들을 기다린다.

崔圭莊(재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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