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3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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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36. 나의 환손문제 해결

공양주 행자 시절의 일이다. 아침 공양시간이 됐는데도 반찬을 준비해야 하는 채공 행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원주스님께 "채공행자가 보이지 않는다" 고 알렸다. 원주스님이 부엌으로 들어서며 한마디 했다.

"야반도주했구먼. "

'야반도주' 란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당장 '채공 행자의 역할까지 내가 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도망친 행자가 원망스러웠다.

'오는 사람 말리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다. ' 절집의 철칙이다. 쉬운 말로 '오는 사람 반가워하지 않고 가는 사람 서운해하지 않는다' 는 뜻이다. 더 짧게 말해 '오면 오고, 가면 가는가' 하는 태도다.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혼자 야밤에 떠나는 것이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이별의 문화' 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기도 쉽지만은 않았다. 처음 몇 번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엔 다리에 힘이 빠지고, 사람이 괜히 멍청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세월이 지나면서 절집의 이별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나의 경우는 환속문제가 별로 복잡하거나 심각하지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야반도주를 생각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족과의 환속전쟁도 그렇게 힘겹지 않았다. 성철스님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큰스님이 '출가한 지 얼마나 됐노' 라고 물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백련암으로 날 보러 왔다. 삭발한 나를 보고는 아니나 다를까 그만 졸도해버렸다. 한참 후 깨어나자마자 "이놈아, 니가 이럴 수 있느냐" 며 대성통곡했다. '큰스님에게 들키면 어쩌나' 하고 속만 태우고 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벼락 같은 호령이 뒤에서 들렸다.

"아들 데려갈 힘 있으면 업어 가면 되지, 뭐 그렇게 울고 있어!"

성철스님이 어머니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큰스님의 기세에 눌렸는지 어머니가 울음을 그쳤다.

"아닙니다. 하도 억울해서 그럽니다. 출세나 하기를 바랐는데 뜬금없이 중이 되어버렸으니 이렇게 원통할 데가 어디 있능교?"

말을 마친 어머니가 다시 통곡을 시작했다. 큰스님의 꾸중이 이어졌다.

"부처님 제자가 되면 구족(九族)이 극락왕생한다는데 아들 출세가 뭐 그리 대순가. 아들이 귀한 것이 아니라 아들 출세가 더 욕심이구먼. 그런 욕심 버리고 아들 중노릇이나 잘 하라고 불전에 기도나 열심히 해야지, 여기서 방성대곡이나 하면 되겠어!"

큰스님의 호통을 듣던 어머니가 울음을 그쳤다. 아들을 환속시키려던 마음을 포기한 듯 절집 생활을 묻고 절간을 둘러보곤 하더니 땅거미가 내리려 하자 발걸음을 돌렸다.

"큰스님만 믿고 갑니다. "

언젠가는 한번 치러야 할 통과의례를 이렇게 어렵잖게 마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출가 소문을 들은 친구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가깝게 지내던 한 친구가 먼저 찾아와 뒷방으로 나를 끌고 갔다.

"니 미쳤나?"

한참 입씨름을 벌였으나 내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음을 알고는 이내 시무룩해졌다. 절 마당으로 같이 나왔다가 큰스님과 마주쳤다.

"중 데리러 왔나?"

"예, 그런데 영 말을 안 듣습니다. "

"그래□ 그럼 간단하네. 너거 둘이 팔씨름해서 이기는 놈 따라 하기로 해라. "

"팔씨름하면 제가 집니다. "

"그래□ 그러면 니도 친구 따라 중 되라. "

"아이구, 아닙니다. 저는 중 못 됩니다. "

"중도 못 될 놈이 중은 왜 찾아와!"

큰스님의 일갈로 통과의례는 끝나갔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7월 19일자 내용중 성철스님의 출가전 아내와 딸이 환속을 종용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

제작과정의 착오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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