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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와이드] 지리산 폭포 물맞이 오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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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여름.선조들은 이런 무더위를 어떻게 식혔을까? 폭포수 물맞이.심산유곡의 폭포 아래서 온몸을 맡기고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면 무더위가 싹 가시고 심신이 개운해 진다.

휴가철에 즐기만한 전통 피서법,지리산 폭포수 물맞이를 소개한다.

19일 오전 10시 지리산 서부능선 끝자락인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기리 수락폭포.

30여 명의 남녀 피서객들이 20m 높이의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폭포수를 맞으며 즐거워하고 있다.모자 위에 수건을 두겹으로 뒤집어 쓴 주부,비옷을 입은 할머니,편안하게 엎드린 할아버지….

이들은 2∼3분 가량 물맞이를 하다가 물줄기를 피해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한다.물줄기가 너무 차가워서 그렇단다.

60대 한 아주머니는 “물맞이를 하면 허리 통증이 가셔 매년 여름철이면 서너번씩 찾아 온다”고 말했다.

수영복 차림의 30대 남자가 폭포 아래서 두손을 치켜들고 ‘야호’를 외쳐대다 세찬 물줄기에 팬티가 흘러 내리자 기겁을 하고 치켜 올린다.물맞이를 하면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수락폭포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폭포 원줄기 아래는 남녀 혼탕,원줄기 왼쪽 위는 여탕,여탕 위 약 15m 지점은 남탕이다.

남탕과 여탕은 원줄기에서 별도의 물길을 뽑아내 굵은 물줄기가 쏟아지게 만든 인공 연못이다.

전북 군산에서 이곳을 찾은 구재윤(丘在閏 ·68)씨는 “지난해 여름 처음으로 물맞이를 한 뒤 근육통이 사라져 올여름 다시 왔다”고 말했다.

물맞이를 하다가 쉬고 싶으면 숲속에 자리를 펴고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폭포 입구 양쪽에 쭉 늘어선 평상과 원두막은 하루 대여료가 1만5천원.

닭백숙 3인분(2만5천원)을 시키면 평상을 무료로 빌려주는 식당도 있다.

이곳에서 16년째 식당을 하고 있는 차차랑(車次郞 ·68)씨는 “물맞이가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주말에는 전국에서 6백∼7백명씩 몰려온다”고 말했다.

지리산 자락의 폭포 물맞이 피서는 지금까지 주로 노인층이 찾아와 즐겼으나 점차 가족 중심의 피서지로 변모하고 있다.

지리산에는 수락폭포 외에도 물맞이와 피서에 적당한 조건을 갖춘 10여 개의 폭포가 있다.

지리산 폭포 물맞이는 옛부터 신경통 ·근육통 ·허리병 ·산후통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맞이에 가장 적합한 조건은 수심이 허리 깊이 정도여야 하고 물줄기가 암벽과 50㎝ 이상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어야 한다.폭포아래 소(沼)가 깊으면 사람이 들어갈 수 없고 물줄기가 암벽에 붙어 흘러 내리면 물을 맞는 몸놀림이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폭포물이 너무 차가와도 효과가 반감된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조건을 갖춘 폭포로는 비룡(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법천(산청군 시천면 중산리)폭포 등이 대표적이다.백운계곡(산청군 단성면 백운리)의 선녀폭포 등은 명상을 하면서 물맞이 하기에 제격이다.높이가 2∼3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폭포왕국’으로 불리는 한신계곡(함양군 마천면 강청리)의 무명 ·천령 ·내림 폭포 등 작은 폭포에서도 가족단위로 오붓하게 물맞이를 즐길 수 있다.

폭포 물맞이는 폭포물을 몸에 직접 맞아야만 좋은 것은 아니다.보기만 해도 더위가 가시는 피서지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불일폭포(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는 계곡에 들어서면 곧바로 한기가 느껴진다.

청학봉과 백학봉 사이 쌍계사 계곡에서 쏟아지는 높이 60m ·너비 3m의 거대한 폭포는 물보라만 맞아도 피부가 아플 정도다.폭포수 위로 오색 무지개도 자주 피어 올라 피서객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아홉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구룡폭포(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는 물소리만 들어도 더위가 사라진다.

용 울음 소리를 닮았다는 폭포수 소리는 세상의 온갖 잡음을 삼켜 이곳을 찾은 이들을 무아의 경지에 빠지게 한다.그래서인지 판소리를 공부하는 국악인들은 이곳을 주로 찾는다.

지리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 폭포 물맞이 유래

여름 피서법의 하나인 ‘폭포 물맞이’는 유두일(流頭日 ·음력 6월 15일)의 풍속에서 비롯됐다.

조선 정조때 학자 홍석모(洪錫謀)가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한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고려 희종 때 김극기(金克己)의 문집을 인용해 물맞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 문집에는 ‘6월15일을 유두날이라고 하는데,옛날 풍속으로 동쪽의 개울과 폭포에서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고 즐겁게 놀았다’고 기록돼 있다.고려 이전부터 물맞이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는 “동쪽은 태양이 솟는 곳으로 양기가 왕성해 잡귀와 부정한 것이 많은데 물맞이는 잔병을 없앤다”고 설명하고 있다.물맞이가 단순한 목욕이라기 보다는 부정한 것을 씻고 건강하게 여름을 나는 민중신앙의 하나라는 설명이다.

특별한 실내 목욕시설이 없어 마음껏 몸을 씻는 것이 그리웠던 조상들이 유두일을 기준으로 자연속 샤워장을 즐겨 찾아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겨울부터 봄까지는 물이 차 함부로 들어갈 수 없지만 유두일부터는 수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지리산 폭포수는 한여름에도 수온이 5∼6도로 차갑다.

*** 지리산 테마산행 안내 성락건씨

“물맞이는 조상들이 자연을 이용해 잔병을 고치고 더위를 식혔던 전통 피서법 입니다.”

지리산 자락 10여 곳의 폭포를 돌면서 물맞이 테마산행을 안내하고 있는 성락건(成樂建 ·56)씨의 폭포 사랑은 남다르다.

지리산 연구모임인 ‘지리산 옹고집들’을 이끌면서 지난해부터 매달 한두차례 40여명의 관광객을 모아 ‘지리산 폭포와 소(沼)를 찾아서’라는 테마 산행을 하고 있다.

“폭포 주변은 경관이 뛰어나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켜줍니다.특히 물맞이를 한뒤 난치병 치료에 효과를 본 사람도 있습니다.”

덕유산 자락인 경남 거창군 남상면이 고향인 成씨 자신도 어릴적부터 여름철 땀띠가 자주나 감악산 자락 폭포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물맞이를 하고 나면 신기하게 땀띠가 씻은 듯 사라지곤 했다는 것이다.

成씨는 주변에 근육통 ·알레르기 ·신경통 ·관절염 ·산후통 ·땀띠 등의 환자를 보면 서슴없이 폭포 물맞이를 권한다.

“물맞이 하러 자주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효과를 인정합니다.어린이들에게는 인상적인 놀이터도 되는듯 합니다.”

그는 테마산행이 없을 때면 지리산 폭포에서 명상을 즐긴다.폭포 물소리를 들으면 세상의 온갖 시름이 사라진다고 한다.폭포는 산의 기운이 분출되는 곳으로 자주 찾을수록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成씨는 “심산 계곡의 폭포수는 차기 때문에 물맞이를 하기 전에 준비운동을 충분히 하고 몸에 물을 먼저 묻힌 뒤 천천히 들어가야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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