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MD 강 건너 불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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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류역사는 공격과 방어의 공방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수단이 나오면 거의 반드시 이를 무력화하는 방어수단도 고안됐다.

그러나 마하 20의 속도를 갖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만큼은 방어 수단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방어수단이 없는 핵무기 경쟁은 결국 '상호확정파괴(MAD)' 라는 상황을 초래한다.

즉 너무 많은 핵무기로 인해 미.소 양국은 핵공격을 받은 후에도 서로 상대방의 시민을 대량으로 살상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갖게 돼, 세계는 인류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공포의 핵균형 아래서 비극적 평화를 유지해 왔다.

MAD라는 상황을 해치는 행위, 예를 들어 미사일 요격체제를 갖추거나 국민을 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체제를 갖추는 일은 전략적 안정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국민을 적의 핵공격에 무방비의 인질로 두는 것이 평화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미국은 미니트맨 미사일을 대상으로 한 요격실험에 성공했다. 인류는 탄도 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가 신으로부터 불을 훔친 이후 되풀이돼온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불은 문명의 원천이지만 잘못 쓰면 엄청난 재앙을 가져온다. 핵도 그렇다. 미사일 방어(MD)가 과연 인류의 평화에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재앙을 가져다줄 것인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부시 정부의 MD구상은 클린턴의 NMD구상을 발전시켜 본토 방어와 동맹국 방어를 분리하지 않고 한 틀로 계획하며, 지상배치 요격체제뿐만 아니라 해상배치와 공중배치 체제도 포함해 적미사일의 발사 직후단계(부스터)서부터 요격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MD계획은 기술적 문제보다 정치적 문제가 크다.

우선 러시아와의 탄도탄 요격미사일(ABM)협정 개정 문제가 걸려 있다. ABM 조약에 따르면, 미.러가 각각 1백기의 요격 미사일을 가질 수 있지만 한 지역(area) 방어만 가능하며 전국토 방위는 할 수 없다.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북한 미사일의 개발 예정연도인 2005년까지 MD를 배치하기 위해서는 조만간 고성능 레이더 기지를 알래스카에 착공해야 하는 형편이다. 미국은 우선 실험용 시설이라는 명목 아래 착공할 예정이지만, 조약 위반임에는 다름없다.

러시아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따른 위협에 노출된 상황에서 ABM 조약의 기본적 틀을 유지하고 MD를 제한적 수준으로 억제한다는 조건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대미 핵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운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 전략핵의 일방적 감축을 선언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동맹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가장 강력한 핵전력에 방어 수단까지 손에 넣은 미국의 일방적 영향력을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부시 대통령은 MD 구상에 동맹국 방어를 통합시키려 하고 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있는 상황에서, MD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부시의 MD 구상이 동맹국 방어를 포괄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그저 반대냐 찬성이냐를 밝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당사자가 돼 버렸다. 현재 MD에 대해 우리는 남북 관계 맥락에서 부정적 영향만을 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MD와 대미 협상을 분명히 분리하고 있다.

북한은 클린턴 정부의 미사일 방어 추진에도 불구하고 대미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더욱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스웨덴 총리에게 2003년까지 미사일 발사 유예를 유지하겠다고 한 시점은 공교롭게도 부시 대통령이 MD 구상을 발표한 직후였다.

이제 안보상의 관점에서도 MD를 논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적극적으로 핵미사일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고, 러시아는 핵전력 의존을 강화한 신군사독트린을 채택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투명성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일본은 언제든지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옵션을 갖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위협에 대해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핵우산 대신 MD를 통한 비핵(非核) 억제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은 핵우산에 의존해온 우리 안보에 있어 중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에 대한 시급한 정책 정립이 필요하다.

尹德敏(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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