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잘나가는 드라마, 해외 로케 가지 않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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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주의 싱그러운 풍광을 보여주는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SBS 제공]

한국의 패리스 힐튼 부태희(이시영)와 4000억원대 유산 상속녀 이신미(이보영)가 등장하는 KBS2 드라마 ‘부자의 탄생’. 최고 재벌가 이야기를 다루는데도 ‘해외 럭셔리 리조트’ 한 번 등장하지 않는다. 지난해 재벌가 ‘F4’를 등장시킨 ‘꽃보다 남자’가 뉴칼레도니아·마카오를 쏘다닌 것과 대조된다.

반면 국내 최초로 하와이에서 로케이션 촬영한 MBC 주말기획 ‘신으로 불리운 사나이’는 “100억원대 제작비를 어디 쓴 거냐”고 비판 받는다. 개연성 없는 극 전개와 일부 연기자들의 연기력 부족이 도마에 올랐다. 시청률도 1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요즘 드라마에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눈에 띄게 줄었다. 경제위기로 인해 방송사들이 긴축 운영에 들어간 게 직접적인 이유다. 해외 촬영의 실익이 뚜렷하지 않은데다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스케일과 리얼리티를 간접 구현할 수 있게 된 것도 ‘로케이션 거품’이 빠지게 된 배경이다.

◆제작비 대비 효율 없어=최근 종영한 KBS ‘추노’는 추노꾼들이 등장하는 도입부에서 광활한 사막 풍경을 보여줬다. 모래바람이 거센 몽골처럼 보였지만 실은 국내 해안가에서 찍고 CG 처리한 것이다. 곽정환 PD는 “해외 장소 물색에다 비용·시간까지 고려하니 득보다 실이 많겠다 싶어 결정했다”고 했다. 한국 사극엔 우리 산하가 어울린다는 판단도 따랐다.

지난해 MBC ‘선덕여왕’ 등 대다수 대형 사극이 해외 촬영으로 스케일을 과시해온 것과 대비된다. 정운현 MBC 드라마국장은 “중국 특유의 광대한 산수와 풍부한 오픈세트 때문에 초반 해외촬영이 관례화됐지만, 요즘은 제작비 등 문제로 잦아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해외 로케이션이 특히 각광 받은 장르는 현대 트렌디물. 이국적 풍광의 판타지를 극대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 주인공의 우연한 만남(SBS ‘파리의 연인’ MBC ‘달콤한 인생’ 등)이나 동반 여행(KBS ‘아이리스’) 등이 ‘클리셰’(판에 박은 듯한 진부한 표현)가 되면서 매력을 잃었다. SBS 김영섭 CP는 “해외 관광청이 협찬하는 게 많은데 일부 드라마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예전만큼 러브콜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완성도·개연성 따라줘야=국내 지방 촬영은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제주도 촬영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해 MBC ‘탐나는도다’가 제주를 특화해서 보여준 데 이어서 현재도 주말 밤 10시 시간대에 ‘거상 김만덕’(KBS1)과 ‘인생은 아름다워’(SBS)가 나란히 제주 풍경을 담고 있다. 잘 찍은 드라마 화면이 관광 명소를 발굴하는 효과를 낳으면서 지자체들이 촬영 유치에 적극적이다. 제주도는 2003년 영상위원회를 설치하고 제작비와 촬영장소 지원에 힘써왔다.

KBS 이응진 드라마국장은 “시청자가 예전처럼 반짝 눈요기에 혹하는 게 아니라 삶의 현장과 녹아 드는 스토리를 요구하면서 해외 촬영의 이득이 많지 않다”며 “국제테러 무대를 설정한 ‘아이리스’처럼 해외촬영도 스토리 개연성이 있어야 투자비 대비 효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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