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핵 저지에 기여할 핵태세검토보고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4월 프라하에서 냉전이 끝난 후 세계적 핵전쟁의 위협이 사라진 대신 핵공격의 위험이 증가하는 현상을 우려하면서 ‘핵 없는 세상’의 비전을 제창했다. ‘핵 없는 세상’을 추진하기 위한 3대 과제로서 핵무기 통제 및 철폐, 핵확산 방지, 핵의 평화적 이용과 핵안전 등을 제시했다.

이번에 발표된 핵태세검토보고서(NPR)는 이런 과제를 이행하기 위한 미국의 핵전략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변화한 핵 환경을 탈냉전사고로 대응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핵 보고서는 미국이 핵무기 역할 축소와 점진적 감축이라는 목표와 핵 억지력 및 안정성 유지라는 목표 사이에서 크게 고민한 흔적이 나타난다. 핵무기의 역할을 축소하지만 북한 및 이란과 같이 핵확산방지협정에 가입하지 않거나 비확산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국가는 잠재적 핵공격의 대상으로 남겨두었다. 핵전력을 감축하지만 핵억지력을 유지하는 방안으로서 재래식 전력, 지역미사일 방어 및 대(對)대량파괴무기 능력을 강화키로 했다. 지역안보구도는 미국과 동맹국에 핵위협이 존재하는 한 억지력에 핵능력도 포함하기로 했다. 미국은 기존 핵 기반시설을 정비함으로써 새로운 핵개발 중단에 따른 불안정성을 일부 상쇄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핵 없는 세상’ 구현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핵무기 감축과 관련해 미국은 러시아와 신(新)전략무기감축조약을 체결했다. 핵물질의 안전한 관리 문제에 대한 논의를 위해 워싱턴에서 열리는 핵안전정상회의도 그 일환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대통령도 참석한다. 4년 이내에 취약한 핵물질을 안전하게 통제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 참가국 정상들이 잠재적 핵테러 위협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 핵테러 예방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구체적으론 핵무기·물질 불법거래 추적, 차단, 처벌을 강화해 테러집단과 같은 비(非)국가행위자들이 핵물질을 획득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핵물질 이전과 핵테러 발생 위협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서 다음 달 열리는 핵확산방지조약 검토회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회의에 참가하는 비핵보유국들이 핵의 평화적 이용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각국의 핵테러 위협에 대한 평가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핵물질 통제를 위한 국제협력은 예상보다 부진할 수도 있다.

미국의 새로운 핵전략은 미국의 핵우산 제공과 북한 핵문제 해결과 관련이 있다. 핵 억지력은 능력과 의지에 의해 신뢰성과 효과성이 강화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미국은 이번에 비확산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핵공격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여러 경로를 통해 변함없는 억지력 제공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특히 미사일 방어, 재래식 전력 등을 보강해 포괄적 억지력을 강화한다는 계획도 수립했다. 따라서 미국의 핵전략 변화가 대(對)북한 핵 억지력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금번 핵 역할 축소 및 핵무기 감축계획을 발표함으로써 6자회담을 주도하는 데 도덕적 정당성을 강화했다. 핵전력 감축과 비확산체제의 강화라는 전반적 추세는 북한의 핵프로그램 추진에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핵안전정상회의에서 핵물질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세계적 노력도 6자회담이 북한의 핵확산활동보다는 핵을 폐기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본다. 한국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폐기할 때까지 북한에 대한 핵 억지력을 확보하려면 미국과 긴밀한 협조가 요구된다. 핵의 평화적 이용에 필수적인 핵안전을 달성하고 핵 문제에 대한 국제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핵안전정상회의와 같은 다자적 노력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석수 국방대학교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