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처럼 재잘거리는 소리 …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1호 20면

“제게는 휴식 같은 시간이죠. 알려진 배우다 보니 직접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아무래도 제한적인데, 트위터를 하면 여러 사람 얘기를 필터 없이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좋아요. 홈페이지도 해봤지만 그건 일방적이죠. 트위터는 쌍방향 소통, 실시간 소통이라는 게 큰 매력이에요. 제일 즐거운 건 140자의 단문이라는 점이죠. 일방적인 연설이 아니라. 소통의 기본은 상대의 말을 듣는 거잖아요. 악플이요? 그런 스트레스는 제로예요. 트위터 사용자들의 분위기가 성숙한데다, 혹 무례한 분이 있다면 블록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를 한창 찍고 있는 배우 박중훈씨의 말이다. 고단한 촬영 일정 속에서도 그는 거의 매일 밤 노트북을 켜고 트위터에 접속한다. 오늘 촬영이 어땠는지, 틈틈이 뭘 먹고 얼마나 운동을 했는지 같은 일상은 물론이고, 팔로어들이 물어오는 대로 배우생활의 에피소드나 영화와 연기에 대한 생각을 문자로 전한다. 트위터로 만나는 그는 스타라기보다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다. 1년쯤 전부터 시작한 그의 트위터(@moviejhp)에는 팔로어, 즉 실시간으로 글을 받아보는 사람이 약 2만5000명이나 된다. “트위터는 1인 미디어이기도 해요. 마치 제 방송국이 있는 것과 같죠.”

트위터(twitter.com)는 2006년 미국에서 시작된 단문 블로그 서비스의 이름이다. 본래는 새가 지저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트위터의 초기화면은 언뜻 블로그와 비슷해 보이지만, 박중훈씨의 말마따나 한번에 올릴 수 있는 글이 140자 이내의 짧은 분량이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는 처음부터 휴대전화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미국의 휴대전화 단문메시지(SMS)의 최대 용량은 160자다. 이 중 사용자 아이디를 드러낼 20자쯤을 빼고 140자를 기본으로 삼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인터넷·휴대전화를 통해 내 트위터에 받아보는 것, 즉 팔로윙이 손쉬운 것도 특징이다.

미니홈피의 일촌맺기처럼 상대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없다. 트위터의 기본 성격을 경희사이버대 민경배 교수는 “(처음 시작하는 데) 울타리가 낮고, (활동을 지속하는 데) 품이 덜 든다”고 표현한다. 여기에 더해 트위터에는 상대의 글을 재전송(리트윗)하거나 답문을 보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민 교수는 이런 기능이 “댓글 달기를 즐기는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의 취향과 맞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트위터가 폭발적인 화젯거리가 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 ‘김연아 선수가 트위터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김 선수(@Yunaaaa, 팔로어 13만여 명)는 요즘은 트위터를 하지 않지만 작가 이외수씨(@oisoo, 팔로어 11만여 명), 두산 그룹 박용만 회장(@Solarplant, 팔로어 2만8000여 명) 같은 명사들의 꾸준한 활동이 거듭 화제를 제공해 왔다. 최근에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가세도 뉴스거리가 됐다.

이런 화제성에 비하면 사실 트위터의 국내 가입자가 그리 많은 건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추정치는 20만~30만 명 선. 싸이월드의 2000만 명은 물론이고 트위터와 비슷한 국내 서비스인 미투데이의 100만 명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트위터의 국내 순방문자는 미투데이와 엇비슷하고, 페이지뷰는 오히려 미투데이를 앞선다. 닐슨미디어클릭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간 트위터의 국내 순방문자는 210만 여명(미투데이 230만여 명), 페이지뷰는 4900여만 건(미투데이 3200여만 건)에 달한다. 검색·메일·미니홈피·블로그 등 기존 인터넷 서비스를 대개 국내 업체가 주도해 온 것과 크게 다른 현상이다.

KAIST 문화기술대학원 한상기 교수는 이런 트위터 열기에 대해 “기존의 서비스에 피로감을 느낀 사용자들이 새로운 서비스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의 싸이월드를 두고 미국의 페이스북에 가입한 국내 사용자가 50만 명을 넘어선 것도 비슷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자연히 국내 트위터 사용자 중에는 정보통신업계 종사자나 얼리 어답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오가는 내용도 아이폰·아이패드 같은 새로운 관심사에 대한 정보 성격이 강하다. 트위터 사용자의 연령대 역시 국내 유사 서비스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한 교수는 국내 트위터의 이런 성격을 종합해 ‘광장’에 비유한다. 소규모 사람들과 좀 더 친밀하고 일상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광장보다는 카페 같은 분위기, 예컨대 기존의 미니홈피나 국내의 유사 서비스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소설가 은희경씨는 2주 전부터 시작한 트위터에 빠져든 기분을 “이런 식으로 고독이 소비되면 예술의 탄생에 지장이 있겠구나”라는 말로 자신의 트위터(@silverytale)에 표현했다. 짐작하는 대로, 작가에게 고독이란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은씨는 과거에도 트위터 같은 게 있었다면 고독을 견뎌낸 덕분에 소설가가 되지 못하지 않았을까를 자문자답했다. “아닐지도 모른다. 이곳에서의 고독은 해소되는 게 아니다. 서로의 고독끼리 다정해져 고독한 채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해준다. 너도 나처럼 고독한 존재라는 걸 깨닫는 것이 고독의 본질이고, 나는 그것을 소설로 써보고 싶어했을 것 같다. 지금처럼.”

트위터의 뛰어난 점은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140자로도 해소될 수 있다는 걸 포착한 데 있다. 사실 트위터의 140자는 결코 짧은 분량이 아니다. 정현종 시인의 유명한 시 ‘섬’은 불과 단 두 줄의 문장, 즉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가 전부다. 띄어쓰기를 합쳐도 24자뿐이다. 트위터의 등장은 사람이라는 섬 사이에 140자의 글도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