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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기든스 인터뷰] "아시아에 맞는 제3의 길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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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앤서니 기든스 교수는 중앙일보 주최 유민 기념강연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중도좌파의 제3의 길 정치인이라고 말하고 떠났다. 한국정치의 문맥에서 중도좌파는 무엇이며 제3의 길은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제3의 길은 무엇인가. 유럽공동체 15개국 중 12개국에서 중도좌파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하는 데 제3의 길은 얼마나 기여했는가. 출국 직전의 기든스 교수와 제3의 길에 초점을 맞춘 일문일답을 가졌다.

▶김영희=제3의 길은 역사.문화.전통이 다른 아시아 나라들도 채택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입니까.

▶기든스=제3의 길은 정치적으로 새롭게 생각하고 재고(再考)하는 데 붙여진 이름이지 모든 나라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고정된 한묶음의 정책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제3의 길은 전통적인 케인스 경제와의 결별과 사회복지의 개혁과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의미합니다.

제3의 길은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개혁하는 데 동원되는 위장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기업주들은 사실상 시간제 고용을 시간제 고용이 아닌 것처럼 위장 도입하는 데 제3의 길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한국과 아시아 나라들은 유럽에서 제3의 길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어요. 나라마다 정치적.문화적 전통이 다르다는 점이 고려돼야 합니다. 신자유주의의 과오는 한가지 모델만 고집하는 겁니다.

▶김=한국에서는 중도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좌파라는 성격규정은 민감한 반응을 부른다는 데 주목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먼저, 제3의 길은 중도좌파와 같은 겁니까.

▶기든스=나는 제3의 길은 그런 의미로 사용합니다.

▶김=그렇다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정책노선은 제3의 길이면서 중도좌파 노선이네요.

▶기든스=얘기가 그렇게 연결되는 건 아니죠. 나의 정의(定義)에서 제3의 길이라는 것은 정책적.이념적인 틀(framework)입니다. 그것은 특정 정치인이 특정한 나라에서 추진하는 특정정책과는 달라요. 나는 대통령이 되기 전의 金대통령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의 생각 속의 영감(inspiration)에 접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말하는 제3의 길에 가까운 것이었어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사이에는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요. 가령 일자리 창출이 중도우파의 입장인지 중도좌파의 입장인지 확실치 않은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좌파와 우파의 구별이 무의미한 건 아니지만 과거와 같이 경직된 구분은 없어요.

▶김=다시 묻습니다. 구체적인 정책은 접어두고, 金대통령은 제3의 길 정치인이고 또 중도좌파 정치인 맞습니까.

▶기든스=그게 내가 이해하는 金대통령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나는 지난 2, 3년 사이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의견을 말할 입장이 아닙니다.

▶김=한국이 1997년 김영삼(金泳三)정부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서명한 합의서는 그때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해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항복문서나 다름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합의는 金대통령의 중도좌파 제3의 길 노선과 충돌하지 않습니까.

▶기든스=IMF 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반드시 IMF의 노선을 지지(endorse)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구조조정에 관한 IMF의 너무 경직된 생각은 틀렸어요. 나는 사회발전에 관한 보다 광범위한 개념을 갖고 있는 세계은행의 입장을 선호합니다.

▶김=클린턴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제3의 길 동지들인 반면 조지 부시 대통령의 노선은 신자유주의라고 생각됩니다. 부시의 미국과 블레어.슈뢰더.리오넬 조스팽(프랑스 총리)들의 유럽 사이에 긴장과 갈등은 없습니까.

▶기든스=선거공약에 관한 한 부시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는 온정적 보수의 깃발을 들고 출마해 당선됐어요. 부시의 선거연설에서 그가 모든 것에 시장원리를 들이대는 신자유주의자가 아닌 게 확실합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어요. 물론 정부보다는 종교단체나 자원봉사단체를 통해 돕자고 했지만. 그러나 대통령에 취임한 뒤의 부시는 달라요. 그는 강경한 우파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우파의 노선을 고수하려고 하면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겁니다.

▶김=부시는 신자유주의 제국의 망상에 사로잡혔다는 의심이 드는데요.

▶기든스=신자유주의는 죽은 이데올로기입니다. 지금부터는 신자유주의를 가지고는 당선될 수 없어요. 마음에 안드는 건 모조리 신자유주의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최소(minimal)정부와 열린 시장과 경쟁 제일주의 같은 걸 의미하는데 그런 걸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온정적 보수가 중도의 오른쪽에 있는 제3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온정적 보수는 공공정책을 현실 세계의 요구에 맞추려고 하면서도 신자유주의에는 없는 온정적인 요소를 유지합니다.

▶김=그렇지만 부시가 일단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온정적 보수에서 온정의 부분을 버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기든스=유권자들의 표는 중도에 몰립니다. 온건한 정책을 원해요. 좌파건 우파건 과격한 정책은 지지를 못받아요. 그런데 부시는 그를 당선시킨 이데올로기에 따른 정치를 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국민이 반발하고, 인기가 떨어지고 상원에서 다수당 자리를 잃었습니다. 정책을 안바꾸면 그런 추세는 계속될 겁니다.

국제관계에서도 미사일방어(MD)망과 환경문제에서 부시는 반대와 압력에 직면했어요. 국제적인 압력을 받은 결과 부시의 노선은 이미 완화되고 있습니다. 압력을 더 가해야 해요. 일부 공화당 사람들은 북한을 MD 구축의 명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부시는 국제관계의 체제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어요.

▶김=부시의 미국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습니까.

▶기든스=여러 측면에서 그렇다고 봐요. 그래서 아주 불안해요. 그의 MD 구상은 지난날의 엄격한 권력정치의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낡은 제국주의적 영토전쟁과 결별하고 국가간 협동으로 많은 중요한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하려던 클린턴의 입장과 거리가 멀어요.

▶김=탄도탄요격미사일(ABM)을 제한하는 협정과 지구온난화 방지에 관한 교토의정서를 파기하겠다는 부시의 정책이 단독주의(unilateralism)라는 비판에 동의하십니까.

▶기든스=그렇습니다. 그들 두 협약은 유지해야 합니다. 교토의정서는 합의된 내용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 국제사회가 대단히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1인당 에너지 소비에서 미국은 세계 평균의 열배나 됩니다.

▶김=바쁘신 가운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만난사람= 김영희 대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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