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도회 토론회, '대불=영험' 불자들 의식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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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앙신도회(회장 백창기) 주최로 11일 열린 불사(佛事)토론회는 일반 신도들 스스로 자성.참회하는 자리였다. '현행 불사문화의 점검과 바람직한 방향 모색' 이란 주제로 서울 조계사 문화관에서 열린 토론회는 해인사 청동대불로 촉발된 불교계 대형불사의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토론 참석자들은 대형불사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승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재가불자인 신도들의 의식개선이 있어야한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발제자 이평래(충남대 철학과)교수는 "불사의 개념도 시대에 맞게 변해가야 하며, 우리도 기존의 불사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거대한 불상이나 불탑과 같은 가시적인 구조물로 신앙을 키웠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불교의 진수인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포교활동과 이를 위한 시설의 건립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불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님들만 아니라 재가불자들 스스로가 깨어있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토론자인 백남석 법사는 "부처님은 스스로의 육신을 허망하다고 가르쳤는데, 우리나라 불교도들은 그 육신을 본뜬 불상에 너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불상 만든다고 하면 시주를 잘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포교활동을 한다면 시주를 않는다" 고 지적했다. 또 "수행을 잘하고 포교에 열심인 스님보다 불사를 크게 일으키는 스님의 공덕이 더 크다고 여기는 신도들의 잘못된 인식도 불교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며 자성을 촉구했다.

시민단체 대표로 참석한 박원순(참여연대 사무처장)변호사는 "해인사가 대불을 짓는다는 얘기를 듣고 성철 스님의 가르침이 훼손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를 비판하는 스님의 글이 나오고, 다시 해인사가 계획을 재검토키로 하는 것을 보며 '불교는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어 "그 나라의 문화재 수준은 결국 국민의 수준이고, 한국불교 불사의 수준은 불자들의 수준을 말한다. 불자들이 무조건 큰 불상이 영험하다면서 찾아다니고 시주하면 언제까지나 대불 소동이 끊이지 않을 것" 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발제자 진철승(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씨는 "1980년대 이후 사회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대형불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불자들의 생활과 불교문화전통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불사임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스님들은 일반 신도, 특히 전문가들의 의견을 거의 고려하지 않아왔다" 고 지적했다.

진씨는 "불사를 일일이 규제.감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지만, 대형불사의 경우 전문가 그룹으로 자문단을 구성해 사전검토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며 "해인사도 자문을 구하겠다고 했으니 믿고 좀 더 기다려보자" 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승려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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