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의 영화질주] '슈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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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옛날 옛날 한 옛날, 어느 성에 예쁜 공주가 살았는데,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아름다운 그 공주님은 마녀의 저주로 높은 탑 안에 갇혀 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공주님은…. 찌---익. 가만 있자, 가만 있자, 이게 뭐야? 히히. 말짱 거짓말이래요!

디즈니의 면전에서 디즈니의 전술을 써서 디즈니의 전략을 비웃고 있는, 그러면서 디즈니보다 더 재미있는 만화가 있다. 독일어로 '끔찍한' 이라는 뜻인 슈렉은 큰 녹색 괴물로 지저분한 진흙 샤워와 도마뱀 요리를 즐기고 심지어는 방귀도 뿡뿡 소리내어 뀐다. 숲속 늪지대에 혼자 살면서,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며 자기가 먼저 괴물인 척 하는 사랑스런 슈렉.

'슈렉' 에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동화의 주인공들이 나와 온갖 청승과 능청을 떨며 본래의 이미지를 벗어 버린다. 피노키오를 지극히 사랑했다던 할아버지는 단돈 몇 푼에 나무 인형을 팔아 버리려 하고, 로빈 후드는 말 그대로 숲속의 뻔뻔한 도둑이며, 불을 뿜는 용도 사실은 겉으로만 무서운 겁쟁이였단다.

결국 '슈렉' 이 이야기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동화라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속에 이미 녹아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왜 키 작은 난쟁이는 백설공주의 만년 들러리여야 하고, 허리가 부러질 듯한 공주들은 하고한날 드러누워 왕자만을 기다리는가□

동화 속의 조연이나 괴물들은 사실 우리가 마음속 깊이 피하거나 무시하고 싶은 어떤 원형적인 그림자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측면에서 녹색괴물 슈렉은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온갖 혐오스러운 꼬리표, 타자라는 그림자를 집약시킨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그 슈렉이, 백인 중산층의 보수적 가치관을 동화라는 당의정에 넣어 국제적으로 세일즈하는 디즈니의 전략을 보기 좋게 비튼다. 슈렉은 디즈니랜드의 상징인 악당 파쿼드의 듀락성에 다다르자 거대한 성채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뭐 열등감 있나, 왜 그렇게 성이 높아□"

'슈렉' 을 탄생시킨 드림웍스는 '개미' 와 '벅스 라이프' 로 디즈니와 대결했던 3D 애니메이션 기술에서 그간 쌓였던 원한을 한 방에 날려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시대의 첨단이라던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전략이나 진보적 이데올로기마저 차용하는 할리우드의 상술일 것이다.

모든 시각예술의 결과물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슈퍼마켓의 진열대로 '슈렉' 은 하필이면 동화를 선택했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차용하여 패러디한다는 점에서 '슈렉' 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 에 버금가는 모험을 한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 모던 패러디의 핵심은 전복이다. 예를 들면 요즘 영화마다 패러디하는 '매트릭스' 의 3백60도 회전 이단 옆차기 장면도 '슈렉' 의 피오나 공주가 선을 보였을 때는 공주라는 원형적인 여성성을 뒤엎는 어떤 전복성이 생기게 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동화를 만들어 내며, 드림웍스의 디지털 가치관은 디즈니의 아날로그 가치관에 맞서 사뿐히 한판승을 거두게 됐다. 그렇다면 할리우드는 정령 슈렉보다 '깨는' 괴물이렷다!

심영섭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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