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연출가 래프 도진 "연출가, 연기 강압하면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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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삶과 밀착하지 못한 연극은 공허하다. "

지난 6~10일 LG아트센터에서 내한 공연을 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말리극장의 '가우데아무스' 연출가 레프 도진(57)의 말이다.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쌍벽을 이루는 말리극장의 예술감독인 그는 이 극단을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앙상블을 선보이는 극단" (영국의 연출가 피터 브룩)으로 만든 현대 러시아 연극의 지존(至尊)이다.

실제로 '가우데아무스' 는 이런 평가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했다. 현실과 밀착한 소재(옛 소련의 건설부대 이야기)를 사실처럼 재현하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앙상블은 관객의 탄성을 끌어냈다. 인간의 실존과 부조리라는 묵직한 주제를 유희적으로 풀어내는 창의적인 발상 또한 놀라웠다.

그 숨은 마력은 무엇일까. 지난 6일 초연이 끝난 뒤 LG아트센터 VIP룸에서 열린 '도진과의 대화' 는 그런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준 자리였다. 밤 10시30분에 시작된 대화는 자정 무렵까지 이어졌다. 연극평론가.연출가.극작가.대학 연극과 학생 등 50여 명이 자리를 지켰다.

'남의 것' 이 좋을수록 더욱 누추해 보이는 게 우리 연극의 현실이다. 그들의 수준 높은 논리를 체화해 도약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런 차원에서 이날 도진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연극은 살아있는 유기체=연극평론가 김윤철(연극원) 교수가 극장의 대소(大小)와 실내외를 불문한 '가우데아무스' 의 유연한 적응력에 대해 물었다. 내한 공연 직전 '가우데아무스' 는 그리스 아테네의 야외극장에서 4천여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했다. LG아트센터는 1천70석이다.

도진의 답은 명쾌했다. "연극은 살아 있는 유기체여서 어떤 공간.관객과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배우들 모두가 연출가이어야 하며, 다양한 영감을 즉시에 풀어낼 수 있는 영혼이어야 한다. "

'가우데아무스' 를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이 유기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대표적인 구성요소인 배우가 그렇게 돼야 한다. '가우데아무스' 는 그런 면에서 연기 교과서였다. 연기자 개개인은 대사.율동.노래 등을 두루 섭렵한 만능인이었으며, 동시에 각자의 개성과 전체의 하모니를 연결시킬 줄 아는 연출자이기도 했다.

▶연극은 결과가 아닌 과정=국립극단 배우 우상전씨가 연출과 배우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한 도진의 답 속에서 '도진식 연극' 의 비밀이 드러났다.

도진은 "좋은 연출가는 배우들의 숨은 능력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용기와 사랑으로 지켜봐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연극은 과정의 예술이다" 고 말했다. 출연 배우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듯 도진의 교수법은 개개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에 맞는 스타일을 스스로 찾아낼 때까지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정에서 연극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왜" 라는 질문은 있어도 "이렇게 해봐라" 는 연출자의 강압은 없다. 도진에 따르면 "연극은 인간이 자신을 알아가는, 삶을 배워가는 과정" 이기 때문이다. '가우데아무스' 도 도진이 가르치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연극 아카데미 학생들과 이런 과정 속에서 완성됐다.

▶러시아적인 게 세계적인 것=도진의 연극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연극 자체가 갖고 있는 '의도적인 세계성' 때문인가. '가우데아무스' 에는 베토벤.슈베르트에서부터 비틀스, 일본의 전통음악에 이르기까지 이곳저곳의 귀에 익은 음악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를 두고 연극평론가 김미혜(한양대) 교수는 "세계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속셈이 아니냐" 고 물었다.

그러나 도진은 "오히려 세계 무대를 위해서는 우리 집(러시아)에서 우리의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 말했다. 그는 " '가우데아무스' 의 음악도 밖(유럽)에 나와서야 유명한 줄 알았다" 고 말했다. 정작 연극에서 중요한 것은 외형이 아니라 각국 나름의 독특한 문제의식이라는 얘기다.

좋은 연극을 만드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너무나 쉬운 도진의 연극관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연극의 본질적 문제들을 다시 환기시키는 값진 충고였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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