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기자의 e-스토리] 무선인터넷의 ‘판도라 상자’ 테더링 서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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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이석채 KT 회장은 지난달 아랍에미리트 ‘2010 미디어 서밋’ 행사에서 차세대 무선인터넷인 ‘테더링(tethering)’ 서비스를 발표했다. ‘연결시키는 밧줄’이란 뜻대로 스마트폰의 USB(휴대저장장치)나 블루투스(단거리 무선연결)를 무선모뎀으로 활용해 일반 PC는 물론 노트북·태블릿 PC에서 인터넷을 할 수 있게 한 기술이다. 휴대전화가 터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스마트폰을 인터넷 연결 만능 열쇠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국내외의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런 큰 발표의 후속 조치 일정이 한 달이 되도록 감감하다. 표면적으로는 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이 차일피일 미뤄져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KT와 경쟁사 SK텔레콤, 방통위의 고민이 3인3색으로 한데 얽혀 있다. 텃밭인 유선사업에서 당장 손해를 봐도 무선데이터로 승부하겠다던 KT나, 무선데이터를 활성화해 IT 강국의 면모를 쇄신하겠다던 방통위가 테더링에 대해 말을 아끼는 연유다.

KT의 고민은 이렇다. 지난해 12월 애플 아이폰 도입으로 모바일 인터넷 시장을 선도한 KT는 테더링을 제2의 승부수로 던졌다. 주요 도시의 와이파이(근거리무선)망과 수도권의 와이브로(휴대인터넷)망 등 무선데이터 인프라가 경쟁사보다 월등해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막상 하려고 보니 그 부작용이 생각보다 강할 것 같아서 발표 때와 생각이 달라졌다. 무선인터넷 트래픽이 폭주하면 통신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테더링 활성화에 필요한 무제한 요금제는 내놓을 생각이 없어 ‘요금폭탄’ 반발도 예상된다.

SK텔레콤 역시 KT의 통 큰(?) 테더링 구상에 난처한 입장이다. 무선데이터 인프라가 열세라 대등하게 싸우기 어려운 처지다. 무장해제 상태에서 KT에 모바일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 뻔하다. 테더링을 놓고 ‘KT의 자폭’ ‘통신시장 붕괴’ 같은 격한 표현을 쓰는 배경이다.

방통위는 테더링을 ‘KT 군기 잡기’와 ‘SK텔레콤 달래기’에 활용하는 눈치다. 이통요금 인하를 유도하려고 SK텔레콤에 휴대전화 초당 요금제를 관철시키면서 KT도 그렇게 만들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KT는 버티고 있다. 방통위는 ‘초당 요금제를 도입해야 테더링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은근히 몰아가는 분위기다.

한 달 전 출시 소식만으로 네티즌들을 들뜨게 한 테더링 서비스가 무선인터넷의 ‘판도라 상자’가 된 셈이다. 특히 음성통화 수익에만 안주하고 무선인프라 선행 투자에 소홀했던 우리 통신업계의 현 주소가 안타깝다. 뒤늦게 모바일 인터넷을 강화하려는 국내 통신업계의 노력이 금세 빛을 볼 수 있을까. KT의 테더링은 그 성패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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