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 ‘외환시스템 선진화 연구위’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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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글로벌 경제에 탈이 날라치면 왜 한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큰 충격에 노출되는 것일까. 10여 년 전 외환위기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었지만,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는 사정이 분명 달랐는데 말이지. 우리의 외환시스템과 거시경제 운영에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개선책도 만들어봐야겠어. 각계 최고 전문가들을 내가 모아볼 테니 자네가 심부름꾼 역할을 좀 하지.”


이규성 코람코자산신탁 회장(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올 초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대표(전 재경부 1차관)를 불러 이런 제안을 했다. 금융위기다, 경제위기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만한 두 전직 관료는 그렇게 의기투합했다.

이 회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재경부 장관을 맡아 외자유치와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이끌며 경제를 되살려 놓았다는 평가를 받는 경제 원로다. 김 대표는 외환위기 당시 외화자금과장으로 위기에 맞섰다. 그 뒤 차관에 오르기까지 금융 및 부동산 시장 등에 문제가 터지면 뒤얽힌 실타래를 풀어내 ‘영원한 대책반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민간 자율의 연구위원회를 준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3월 중순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연구위원회가 출범했고, 8일 첫 세미나가 서울 서소문 농협경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계획된 12차례의 세미나에 직접 참여하겠다”며 “우리는 어디까지나 민간 자율의 모임이지만 우리가 집대성한 보고서는 정부 정책에도 활용돼 한국 경제가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또 김 대표는 “선진 각국에선 경제가 큰 어려움에 직면한 뒤로는 전직 관료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민간 주도의 위원회를 구성해 정책 대안 보고서를 만드는 게 일반화돼 있다”며 “한국에선 우리가 그 첫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의 공식 타이틀은 ‘글로벌 경제 환경변화에 대응한 거시경제 및 외환시스템 선진화를 위한 연구’다. 이 회장이 초빙교수로 있는 KAIST 경영대학원 금융공학연구센터와 김 대표의 농협경제연구소가 공동 주관해 연구회를 이끌게 된다. 연구자금은 KAIST가 댄다. 발표와 보고서 집필을 책임질 연구위원은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한국은행의 실무 책임자, 금융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농협경제연구소 박사들, 대학의 교수들로 구성됐다. 연구 보고서는 오는 11월 발간될 예정이다.

세부 연구 내용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 파급되는 경로와 영향 ▶개방경제로서의 한국 경제의 기본 구조 ▶글로벌 위기에 대한 한국의 정책 대응과 효과 ▶위기에 대응한 외환시스템의 강화 방안 등이 담긴다. 정책 제안은 주로 외환시스템의 개선에 집중된다. 그중에서도 ▶적정한 외환보유액 규모 ▶글로벌 핫머니의 유출입 통제 ▶외환시장 개입수단의 다양화 ▶재정부와 한은 간 외환시장 개입 공조 등에 대한 의견이 제시될 예정이다.

김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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