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출전 포기 압력’ 사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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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코치의 강압에 의한 대회 출전 포기, 대표 선발전에서 특정 선수와 코치들의 담합까지.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을 둘러싼 의혹들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대한체육회는 8일 대한빙상연맹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 2관왕 이정수(21·단국대) 선수는 “지난달 세계선수권(불가리아 소피아) 개인전에 출전하지 않은 것은 코치의 강압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당사자인 전재목 대표팀 코치는 부인했지만 이정수와 함께 개인전 출전을 포기했던 김성일(단국대) 역시 코치의 강압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더구나 지난해 4월 (올림픽) 대표 선발전 당시 일부 선수와 코치들이 모여 “우리 모두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협조하자”는 협의를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담합을 했다는 얘기다. 선수끼리 밀어주기(팀플레이)는 실격 사유다.

본지가 밴쿠버 올림픽 개막 직전(2월 2일)과 쇼트트랙 경기가 끝난 직후(3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안현수·진선유 등 특정선수를 빼기 위한 편법이 있었다’고 보도한 내용이 공식 확인된 것이다.

체육회는 빙상연맹에 대표 선발전 및 강압 여부 재조사와 관계자 징계를 요구했다. 만일 조사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연맹 이름으로 형사고발 조치하라고 촉구했다.

밴쿠버 올림픽 당시 훈련 도중 이정수(가운데)가 전재목 코치(오른쪽)와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수 불출전 이유=이정수는 세계선수권 개막 직전 ‘발목 부상’을 이유로 자필 사유서를 쓰고 개인전 출전을 포기했다. 선발전 4위였던 김성일도 ‘개인전 출전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이들 대신 선발전 5위인 곽윤기(연세대)가 개인전에 출전했다. 그러나 두 선수는 체육회 감사팀에 “전재목 코치가 불러주는 대로 불출전 사유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했다. 전 코치는 “(사유서는) 선수들이 자의적으로 썼다. 다만 사유서 작성 방법을 몰라 문안만 불러줬다”고 했다. 감사팀은 “전 코치가 자신이 지도한 곽윤기의 메달 획득을 위해 강압적인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을 냈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추정’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살상 강압을 인정한 것이다. 이정수 선수는 “강압은 코치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빙상연맹) 윗선의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대표 선발전 담합=지난해 대표 선발전에서 선수·코치들 간에 ‘협의’를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선발전 마지막 경기인 3000m 수퍼파이널 경기 직전에 일부 코치와 선수들이 모여 “우리 모두 5위 안에 들어 대표선수로 선발될 수 있도록 상호 협조하고, 국제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진술한 내용이다.

◆왜 체육회가 빙상연맹을 감사했나=3월 24일 안현수(성남시청)의 아버지가 인터넷에 ‘이정수가 세계선수권 개인전을 포기한 것은 부상이 아니라 빙상연맹의 부조리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여론이 들끓었으나 빙상연맹과 체육회는 이를 무시했다. 오히려 빙상연맹은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사유서를 썼다”며 공식적으로 부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혹이 커지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체육회에 감사를 지시했고, 체육회는 3월 30일부터 4월 7일까지 감사를 진행했다.

◆조치와 전망=체육회는 빙상연맹에 지난해 4월 대표 선발전 당시 비디오 판독과 관계자 조사를 요구했다. 경기 장면을 분석해보면 ‘담합’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로 밝혀지면 관련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세계선수권 개인전 불출전 강압 여부도 자체 조사토록 했다. 그러면서 단서를 붙였다. 만일 조사가 불가능하면 1개월 내에 연맹 명의로 형사고발하라는 것이다. 조사를 해야 할 연맹 집행부가 의혹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자체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체육회는 2차 감사 여지를 남겨놓았다. 23, 24일 열리는 대표 선발전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선수들이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손장환 선임기자


빙상연맹 감사하기까지

3월 17일 이정수·김성일, 세계선수권 앞두고 개인전 불출전 사유서 제출

24일 안현수 아버지, 인터넷에 “이정수 불출전은 빙상연맹 부조리 때문” 글 게재

29일 문화 부, 체육회에 빙상연맹 감사 지시

30일 쇼트트랙 대표팀 귀국, 체육회 감사 시작

4월 8일 대한체육회, 감사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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