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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선 여성이 '성'을 주도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애인 이 유부남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상관 없다. 부담 없어 더 좋다' 라고 생각했다면 다수파에 든 셈이다. 헤어지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소수파다.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그렇다.

잠자리에서 남자가 주도하는 게 자연스럽나?

이렇게 생각하는 여성은 거의 없다. 여성포털 사이트 팟찌닷컴(http://www.patzzi.com)에서 조사한 결과다. 여기에 찬성한 사람은 6%뿐. '여성도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혀야 한다, 누가 먼저 요구하든 상관없다' 는 의견이 94%다.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솔직한 대답이 가능하다. 바로 인터넷의 장점이다" 라는 게 팟찌닷컴 '러브 앤 섹스' '텔미 섹스' 채널을 운영하는 이군(egoon)의 설명이다. "성에 관한 거라면 면접조사든 설문조사든 정확도가 떨어진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고 정답에 맞춰서 답을 하니까. 하지만 인터넷에서는 안 그래도 된다" .

그래서일까. 요즘 여성포털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있는 분야는 단연 성(性)이다. 마치 이 시대 성문화의 축소판 같다.

여성 회원뿐 아니라 여성을 가장한 남성, 때로는 고민해결사를 자처하는 '답변맨' 까지 이곳을 찾고 있어 이곳은 여성들만의 성 얘기라는 한계를 넘어선다. 속칭 '군바리' (군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코너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 팟찌닷컴의 경우 전체의 20% 정도를 남성회원으로 추측한다.

레즈비언이나 호모섹슈얼, 트랜스젠더도 인터넷 안에서는 하나의 성적 취향으로 당당하다.

레즈비언 카페, 연상연하 전성시대, 한채윤의 동성애 이야기 등 팟찌의 '러브 앤 섹스' 안에는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여기는 이들을 위한 코너도 마련돼 있다. "처음엔 호기심 때문에 글을 읽기 시작했고 거부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들의 애틋한 사랑에 함께 안타까워할 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는 네티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는 것도 인터넷의 힘이다.

"최근 가수 박진영과 기독교 윤리실천운동회가 음반의 선정성 때문에 다투고 있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요즘 많은 10대들은 중고등학교 때 연애를 경험하고 첫 섹스를 한다" 고 잘라 말하는 이군은 "그 경험을 삶의 과정으로 삼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게 어른들의 할 일" 이라고 덧붙인다.

게시판에 올라온 각종 고민들을 살펴보면 최근 기혼여성들 사이의 화두는 단연 불륜.

남편의 불륜에 고민하는 주부의 "신랑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휴대폰에서 여자의 전화번호를 봤죠…너무 답답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고…어쩌지요?" 라는 고민에 "대화해 보세요" 라는 정통파 조언부터 "휴대폰이 016일땐 이렇게 확인하고, 018일땐 요렇게 확인해보세요" 라는 선배 주부의 구체적 노하우까지 다양한 답글이 올라온다.

자신이 불륜에 빠진 주부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른 남자에게 매력을 느꼈습니다…남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요…어떡해야 할까요. "

미혼 여성들의 경우엔 어린 나이에 경험하는 첫 키스, 첫 섹스, 임신과 피임, 유부남과의 사랑, 동거와 결혼이 화제의 중심이다. 비디오방에서 벌어지는 미혼 남녀들의 성관계도 가난한 연인들의 새로운 사랑 풍속도.

유부남과의 사랑 경험을 게재해 화제가 되고 있는 한 미혼 여성은 "기억을 정리하니까 마음이 가벼워졌고, 쓰면 쓸수록 객관적이 돼 관계를 정리하는데 도움이 됐다" 고 말한다. 언뜻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주제지만 결론은 언제나 건전하다. "네티즌들에게는 자정 능력이 있다" 는 게 운영자 이군의 결론이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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