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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함장, 침몰 직후 구조선 오자 “적일지 모르니 전원 머리 숙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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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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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생존 승조원 57명이 7일 언론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당초 최원일 함장을 비롯한 몇몇 간부만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신적 후유증을 앓는 병사들이 많은 데다 상당수가 언론과 접촉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신은총 하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사건 당시의 충격으로 인한 골절로 조영연 중사는 오른팔에 깁스를 했고, 허리보호대(코르셋)를 착용한 병사들도 있었다. 일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다음은 생존 승조원과의 일문일답.

천안함 침몰 사건 발생 이후 처음으로 생존 장병 기자회견이 7일 오전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렸다. 사고 직전 상황에 대해 박연수 대위(마지막줄 왼쪽) 등은 당시 정상 근무 중이었고 특이 사항 발생 조짐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최원일 함장(가운데)이 당시 상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기자회견에는 부상이 심한 한 명을 제외한 57명이 참석했다. 이날 오후 예정됐던 실종자 가족과 생존 장병들의 만남은 실종자 가족의 요청으로 연기됐다. [사진공동취재단·뉴시스]

-현재 심정은.

“아직 실종 장병들이 옆에 있는 것 같다. 살아 있다는 희망으로 저에게 복귀신고 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최원일 함장)

-사건 발생 직전 뭘 하고 있었나.

“함교 당직사관이었다. 사건 직전까지 정상 근무 중이었고, 함내에 특이사항이 있었다면 저에게 보고됐을 것이다. 따로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박연수 대위)

-소나(음향탐지기)에 포착된 것은 없었는지.

“당시 음탐기상 특별한 신호가 없었고 정상 근무였다.”(홍승현 하사) ※당시 잠수함이나 어뢰 등을 탐지하지 못했다는 얘기임.

-침몰 당시 천안함 임무는.

“그 지역에서 16회 이상 작전했고 당시 (북한의) 도발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최 함장)

-‘쿵’ 하는 소리 외에 다른 상황을 목격한 건 없나.

“야간에는 등화관제를 하고 대원들이 외부로 나가다 실족해 떨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문을 폐쇄한다. 외부에 나가는 사람은 좌·우현 견시(갑판에서 주로 전방을 주시하며 육안으로 항로를 살피는 임무)뿐이다. 물기둥이 후방에서 발생했다면 확인하기 힘들다.”(부함장 김덕원 소령) ※물기둥은 기뢰 폭발 시 일어나는 현상임.

-디젤엔진실과 가스터빈실 근처에서 소리를 들은 게 있나. 내부 폭발은 아닌가.

“함정은 6노트(11㎞) 정도의 저속으로 기동한다. 이때는 디젤엔진을 사용하는데 17년 동안 군생활을 하면서 배에서 폭발했다는 것을 들은 적도 없고, 내가 본 자료에도 그런 건 없었다. 폭발 직후 정전이 돼 함미에서 발전기를 가동해 전원을 복구하려 했다. 그러나 (함미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바다에 달빛이 반짝이는 걸 보고 함미가(절단돼)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함교로 올라가 함장의 지시를 따랐다. 고속정이 도착했을 때 적일지 모르니 전원이 머리를 숙이고 있으라는 얘기를 들었다.”(정종욱 상사)

-당시 후타실에 5명이 있었는데 누구이며 뭘 했나.

“나도 운동을 좋아해 항상 후타실에서 운동을 해 왔다. 그날은 업무보고를 위한 문서 작성을 하느라 후타실에 가지 않았다. (후타실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자) 5명이 항상 운동을 같이 하면서 봐 왔던 동료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오성탁 상사)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정말 답답한 심정이다. 내 생명과 같은 천안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 아직도 내 옆에 있는 듯한 장병들이 가슴에 묻혀 있다. (울먹임) 그리고 누구보다 슬퍼할 실종자 가족 생각뿐이다.”(최 함장)

민·군 합동조사단은 이날 최 함장이 사건 당시 2함대 사령부 22전대장(대령)과 지난달 26일 오후 10시32분부터 나눈 급박한 휴대전화 통화 내용도 공개했다. 최 함장은 당시 “뭐에 맞은 것 같다”며 고속정 투입을 요청했다.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임.

정용수·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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