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한국의 토머스 제퍼슨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취임하던 해 4월 신문의 날 기념행사에서 언론과 방송의 역할이 없었다면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엄청난 선언을 했다.

"토머스 제퍼슨(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쓴 제3대 대통령)은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할 것인가,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 단호하게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 "

제퍼슨이 2백년 전에 처음 말하고 金대통령이 복창(復唱)한 그 말은 높은 지성과 민주주의적인 사고(思考)를 가진 탁월한 지도자가 아니고는 실천은 고사하고 이해도 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날 '한국의 토머스 제퍼슨' 이고 싶은 金대통령은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찬양 일색보다는 우정 있는 비판이 중요하다. 잘한 것만 골라서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아도 좋다. 대통령이 그런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해서는 안된다. "

***빈사상태 몰린 빅 3신문

그로부터 3년의 세월밖에 흐르지 않은 지금 金대통령 정부의 언론정책은 한국의 주요신문들을 빈사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金대통령의 언론관이 달라진 것이다. 1999년 4월까지도 金대통령은 언론이 지역감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과장 보도한다고만 불평했다. 그는 언론이 지역차별을 선동하는 사람들을 국민의 공적(公敵)으로 규탄하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해 11월 金대통령은 국민들이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정치인과 함께 언론인들을 심판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올해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역감정의 악화도 언론탓,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빠진 것도 수구(守舊)언론탓이라는 생각이 金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에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원정에 나선 고대 페르시아 황제들이 패전소식을 알리는 메신저(傳令)의 목을 베었다고 해서 나쁜 소식을 가지고 오는 '메신저를 죽인다' 는 영어표현이 생겼다. 지역갈등과 남북대화의 문제점을 보도한 한국 언론은 패전소식을 전한 페르시아의 전령 신세가 되고 있다.

민주당의 정대철(鄭大哲)의원은 한국은 "검찰청에 가서 죄인 안되고, 국세청에 가서 탈세자 안될 수 없는 나라" 라고 개탄했다. 일단 검찰청 포토라인에 서면 그 사람의 명예는 치명상을 입는다. 검찰조사나 재판결과와 관계가 없다.

빅3신문들은 각각 통고받은 8백50억원 전후의 세금추징액만큼 이미지를 손상당한다. 탈세사건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결국은 법정에서 세금추징액이 대폭 줄어들 게 분명하지만 "8백50억이오!" 할 때 손상당한 이미지는 원상회복이 안된다. 사주들이 고발당한 신문의 경우는 더욱 그럴 것이다.

주요신문에 대한 일제 공격에는 온갖 자극적인 용어와 생경한 주장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어느 국회의원은 언론자유는 탈세자유가 아니라고 외친다. 언론자유가 탈세자유라고 말한 언론인이 있는가. 파괴적인 언어로 상부의 점수는 땄을지 몰라도 국회의원의 발언으로는 참으로 유치하다.

그들은 국민을 들먹인다. 국민의 80% 이상, 언론종사자의 90% 이상이 언론개혁에 찬성한다는 조사결과도 인용된다. 말의 정의(定義)상 개혁이 좋게 고치는 것을 의미한다면 90%가 아니라 1백% 찬성이라야 맞다. 개선하자는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개혁을 빙자한 비판언론 길들이기라면 문제는 다르다. 3대신문 때리기를 주도하는 문화방송의 여론조사에서도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56%다.

***신문없는 정부 될까 우려

언론자유는 언론매체의 자유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메시지(내용)와 미디어(매체)의 구별을 견강부회(牽强附會)한 형식논리다. 오늘의 금융구조에서 신문사가 은행에 큰 빚을 지면 정부에 코가 꿴다.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신문이 정상적인 언론일 수 없다. 가혹한 신체적인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 그것은 정신과 육체를 분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二元論)에서나 가능한 주장이다.

방송과 일부 신문을 동원해서 비판적인 신문들을 길들이려다 전체 언론을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가 초래되면 金대통령에게 남는 선택은 그의 희망과는 반대로 신문 없는 정부뿐일 것이다. 金대통령이 바라는 것이 이런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