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드니즈 르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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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사 속의 미술품 컬렉터로는 단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메디치 가문이 꼽힌다. 그때만 해도 돈.권력을 쥔 이가 예술까지도 독점하던 시기였다.

현대 들어 이 역할의 한 축은 화랑 경영자, 즉 화상(畵商)이 떠맡게 된다. 본디 작품을 사고 파는 화상이지만, 거물이 되면 그 역할이 영판 달라진다. '작가 열명 못지 않은' 막강한 영향력이 그 일례인데, 그런 거물의 우선적인 자질은 눈썰미다.

한데 현대의 화상 중에서 '한 안목 했던' 사람이 다니엘 칸바일러이다. 무명시절의 피카소를 척 하니 알아본 사람이 바로 그이다. 큐비즘의 옹호자인 그의 이름이 미술사전의 표제어로 오르는 영광도 그 때문이다. 반면 사회적 기여도로 따져 멋쟁이는 바이엘러이다. 그는 '현대미술의 장터' 바젤 아트페어를 창설한 주인공이다. 메디치의 위대한 문화적 전통을 되살려 놓은 것이다.

이들이 모두 유럽쪽 거물이라면 미국의 자랑은 페기 구겐하임이다. 유명한 추상표현주의의 잭슨 폴록에게 첫 개인전을 열어줬던 사람이 바로 그 우아한 여성이다. 어떠신지. 문화의 아우라가 있는 이런 신선한 얘기에 조금 관심이 가신다고?

그렇다면 현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행사 중 가장 괄목할 만한 이벤트 하나를 마저 둘러봐야 한다. 갤러리현대와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세기 추상미술의 빛과 움직임전(展)' (8월 15일까지)말이다. 지난 1백년 인류의 지적(知的)모험을 확인시켜주는 이 전시의 진정한 볼거리는 천문학적 가격의 작품이 아니다. 외려 프랑스의 거물 여성 화상 드니즈 르네가 주인공이다.

왜 그런가. 출품작 전부가 그가 자기 안목으로 고르고 후원해온 작품이다. 문제는 그 출품작들이 현대추상미술과 동의어라니 경이롭지 않은가!

마침 그의 대화록 『드니즈 르네와의 대화』(시공사)가 나왔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외국 화상에 대한 경탄이 공허한 찬탄으로 그쳐선 안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상황에 대한 성찰이다.

국내의 경우 모든 부문이 그렇지만 유난히 공공성격의 미술관 기능이 영 시원치 않다. 이 빈자리를 채워온 것이 70년대 초반 이후 상업화랑이었다. 준(準)거물급의 화상들도 없지 않다. 따라서 이렇게 되물어야 한다. "상업적 유통회로 속의 화상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한단계 올려주는 사회적 풍토란 과연 무엇일까?"

조우석 문화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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