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 포르셰(Porsche)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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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포르셰는 달리기 성능으로 승부하는 ‘2인승 스포츠카’의 유전자(DNA)를 지켜온 자동차 회사다. 2002년 포르셰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카이엔을 내놓자 대다수 팬들은 ‘판매를 늘리기 위해 전통을 버렸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그러나 그 비난은 카이엔이 탁월한 주행 성능을 발휘하면서 “포르셰가 만들면 SUV도 스포츠카가 된다”는 찬사로 바뀌었다.

포르셰의 창업자는 독일의 천재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다. 하지만 현재의 포르셰를 만든 주인공은 아들 페리 포르셰다. 엔지니어와 사업가 재능을 함께 물려받은 그는 아버지와 함께 폴크스바겐의 딱정벌레(비틀)차를 개발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독일 패전 뒤 아버지가 나치에 협력한 죄로 투옥됐을 때는 부도난 포르셰 설계 사무소를 일으키면서 사업가 기질을 보여줬다. 현재 포르셰를 먹여 살리는 SUV 카이엔은 물론이고, 엔진을 차체 가운데 얹고 뒷바퀴로 구동하는 경량 스포츠카 박스터와 카이맨의 아이디어도 그에게서 나왔다. 시장을 앞서 내다보는 탁월한 경영자였다.

그는 “내가 꿈꾸던 차를 찾을 수 없어 내 스스로 만들었다”는 명언을 남기며 1948년 포르셰 최초의 스포츠카 356을 개발했다. 이 차는 개발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당시 최고의 레이싱 경주였던 인스브루크 스태드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때부터 포르셰의 남다른 자존심이 시작된다. 포르셰의 모든 차는 핸들 왼쪽에 키박스가 있다. 1초라도 빨리 출발하기 위해 왼손으로 열쇠를 꽂자마자 기어를 조작하는 초창기 레이싱카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명차인 911 스포츠카 바퀴에는 볼트가 단 한 개만 있다. 레이싱 도중 타이어 교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볼트 하나만 쓴 것이다.

페리의 마지막 꿈은 뒷자리도 여유로운 4도어 스포츠카였다. 몇 번이나 초기 개발을 끝내고도 경영난에 좌절하곤 했다. 생전에 못다 이룬 꿈이 지난해 탄생 100주년에 이뤄졌다. 4도어 쿠페인 파나메라(사진)의 등장이다. 5L V8 엔진을 차체 앞에 얹고 뒷바퀴를 굴리는 ‘FR’ 방식으로 400마력을 낸다. 한 가족을 다 태우고도 스포츠카처럼 도로를 누빌 수 있다. 터보 모델은 무려 500마력을 낸다.

포르셰는 93년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대우그룹이 인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김우중 대우 회장의 비서를 지냈던 당시 대우차 한영철 부장(현 프라임모터스 사장)이 인수 논의 차 독일 공장을 다녀왔던 비사도 있다. 포르셰는 하반기 연비를 좋게 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출시한다. 어쩐지 포르셰답지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달리기’라는 포르셰의 DNA는 살릴 것만 같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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