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금고지기’ 누가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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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00년의 아성을 쌓을 것인가. 96년의 철옹성을 허물 것인가.

서울시금고 은행 선정을 앞두고 은행 간 물밑 경쟁이 시작됐다. 1915년 조선상업은행 시절 경성부(京城府) 시금고를 따낸 뒤 이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은행(옛 상업·한일은행 합병)에 다른 은행들이 도전장을 내고 있다.

서울시는 2011년부터 4년간 시금고를 맡을 은행을 8일 공모한다. 시금고 은행이 되면 서울시와 25개 구청의 한 해 예산 39조원을 운용할 수 있다. 하루 평균 잔액만 3조원에 달한다.

또 신용도 높은 서울시 공무원 1만 명과 시 산하기관 및 구청 직원 1만5000명을 대상으로 한 고객 유치전에서도 유리한 입장에 선다. 현재 서울시금고인 우리은행은 시청은 물론 25개 구청에 입점해 공무원과 민원인들의 금융 거래를 독차지하고 있다. 서울시가 시금고를 공개로 선정한 것은 98년부터다. 투명하게 선정하기 위해 공개 경쟁 방식을 도입하도록 조례에서 정했다.

우리은행은 이번에도 시금고 선정을 자신하고 있다. 우리은행 김용섭 공금영업부장은 “결혼한 부부도 50년을 못 사는데 우린 96년을 같이 살았다”며 “이번에 100년을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세목마다 모두 다른 전산 프로그램을 갖춘 곳은 우리은행뿐”이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직원들의 시금고 운영 노하우도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시금고는 시나 구청의 예산 운용 외에도 연간 3000만 건이 넘는 지방세 납부를 처리해야 한다. 재산세·주민세·자동차세 등 15가지 지방세는 물론 교통유발분담금이나 환경개선분담금 등 서울시 고유의 세입·세출 관련 전산 프로그램이 1000여 건이 넘는다.

현재 우리은행 이외에 시금고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신한·하나·기업은행 등이다. 이들 은행 중 한 곳의 관계자는 “시금고에 선정될 경우 시청이나 구청 공무원들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를 전면 면제해줄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금고 운영에 필요한 점포와 전산망을 두루 갖춘 우리은행과의 경쟁이 쉽지만은 않다. 다른 은행들 사이에선 자칫 들러리만 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부 은행은 서울시의 선정 방법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시의 시금고 선정 기준은 ▶금융기관의 신용도와 재무구조 안정성(30점) ▶시에 대한 대출·예금 금리(18점) ▶시민 이용 편의성(18점) ▶금고업무 관리 능력(24점) ▶시와 협력사업 추진능력(10점) 등이다. 하지만 서울시가 개최하는 각종 행사에 후원을 해야 하는 시와의 협력사업 추진능력이 당락을 가를 것이란 예상이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서울시 행사 후원비로만 1000억원을 쓴다는 은행도 있다”며 “경쟁이 치열해지지 않도록 시금고를 복수로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정윤택 재무국장은 “대학교수와 변호사 등 민간인이 절반 이상 참여하는 시금고 심의위원회에서 평가항목에 따라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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