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두목 이강환, 시민 신고로 결국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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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파의 두목 이강환씨가 6일 휠체어를 탄 채 부산 연제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송봉근 기자]

6일 오전 9시29분. 부산시 부산진구 부암1동 부산진구청 앞 6차로 도로. 휠체어를 탄, 머리가 하얀 노인이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의 도움을 받아 벤츠 승용차에서 내린 뒤 뒤쪽에 정차해 있던 체어맨 차량으로 옮겨 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 시민이 부산경찰청 112지령실에 “이강환이 나타났다”고 신고했다. 곧바로 부암지구대 112순찰차 등 7대가 출동해 고급차량 2대를 에워싸고 노인의 신원을 확인했다. 부산 주먹계의 거물 이강환(66)씨임이 드러났다.

10분 뒤 도착한 박흥석 부산진경찰서장에게 이씨와 함께 있던 변호사는 “자수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서장은 “수배된 지 오래됐는데 지금까지 자수하지 않았다”며 체포한 뒤 이씨를 수사해온 연제경찰서에 넘겼다.

전국 최대의 폭력조직 칠성파 두목인 이씨의 44일간 도주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함께 있던 건장한 청년들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이씨는 수배전단보다 살이 많이 찐 모습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두세 명이 거들지 않으면 이동하기 힘들다. 경찰 관계자는 “휠체어를 탔지만 이씨의 건강상태가 좋아 보였다. 부산지역 조직원들의 집을 옮겨 다니며 도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이 이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선 것은 2월 22일. 이씨는 이날 낮 12시20분쯤 부산의 한 호텔 커피숍에 나타났다가 경찰의 추적을 알고는 달아났다. 이씨가 잠적하자 경찰은 지난달 2일 신고 포상금 1000만원을 내걸고 전국에 공개수배했다.

이씨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부산의 한 건설업체 사장(66)을 13차례 위협해 4억원을 빼앗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직원을 동원해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이씨가 건설업체 사장을 황령산으로 끌고가 무릎을 꿇린 뒤 폭행하고 “경찰에 신고하면 죽여버린다”고 협박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건설업체 사장을 협박해 돈을 갈취했다는 첩보를 처음 입수한 것은 2007년 말. 경찰이 피해내용을 확인하려 했으나 보복을 두려워한 건설업체 사장이 피신했다. 경찰이 2년여 동안 설득한 끝에 피해자 진술을 확보해 어렵사리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도피기간 중 거물급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몇 명의 변호사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유명 법무법인의 변호사를 만났으나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구체적인 혐의사실과 도피과정 등을 조사한 뒤 7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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