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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빠진 스타 ① 개그맨 김병만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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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석호 기자, 그래픽= 김상하

그래픽= 김상하

동료 연기자를 목말 태우고 평균대 위를 걸으며 “난 여기서 잠도 자”라고 허풍을 떠는 개그맨 김병만. 2년4개월 전 KBS 개그콘서트에서 ‘달인’ 코너를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해도 어설퍼 보였던 그는 꾸준한 훈련과 연습을 거쳐 이제는 시청자들로부터 “진짜 달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가 또 다른 분야의 ‘달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한 것. 그것도 방송과는 거리가 먼 건국대 대학원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내 손으로 직접 개그 전용 공연장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지난달 31일 여의도에 위치한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김병만(35)씨는 “공부에 대한 한(恨)이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는 게 그냥 싫었어요. 집안 사정도 안 좋았고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기만 했어요. 말하자면 ‘문제아’였죠. 당시 대학에 간다는 건 엄두도 못 냈습니다.”

고교 졸업 후 가난이 싫었던 그는 어머니에게 돈 30만원을 빌려 고향인 전북 완주를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학창 시절 “웃긴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던 터라 ‘희극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상경하자마자 연기학원부터 등록했다. 그러나 1m60㎝ 남짓한 키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너무 작아서 방송 진출이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연극을 해 보라고 하더군요.” 95년부터 대학로 연극판을 돌아다니며 소극장 청소와 세트 제작, 연기자 선배들의 빨래까지 안 해본 게 없다.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연기를 배웠고, 아령으로 배를 치며 발성 연습을 했다.

“단역부터 시작했는데, 선배들이 ‘열심히 한다’며 비중을 조금씩 늘려줬어요.” 그러나 비중이 늘수록 “연기 이론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기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탓이었다. 그때부터 연극·영화와 관련된 책을 보며 독학했다. “그때서야 ‘내가 왜 공부를 안 했을까’ 후회가 되더군요.” 김씨는 대학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험 울렁증 때문에 대학에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학 낙방만 9차례. 서울예대만 여섯 번 떨어졌다. “울렁증을 극복하는 것도 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지하철 무대에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며 울렁증을 극복해 나갔죠. 만약 그때 포기했다면 지금의 ‘달인’은 없었을 겁니다.” 결국 2002년 KBS 공채 개그맨 시험과 백제예술대 합격이라는 2개의 성과를 모두 일궈냈다.

“저는 처음부터 슬랩스틱코미디(연기와 동작이 과장되고 소란스러운 희극, 찰리 채플린이 대표적인 배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전문대 나와서 슬랩스틱한다 그러면 ‘머리에 든 게 없어서 저러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가 동양대학교 공연영상학부에 편입한 이유다. 그는 올해 2월 4년제 대학 졸업장을 따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도전을 했다. 그가 건축공학 대학원에 들어간다고 하자 주위에서는 “요즘 잘나가는데, 왜 생고생하느냐”고들 말렸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단호했다. “제가 건축에 대해 알고 졸업하려면 5년, 아니 10년이 걸릴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반드시 개그맨들과 관객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원형의 개그 전용 소극장을 제 손으로 만들어낼 겁니다.”

지금의 개그맨 김병만이 있기까지, 힘든 길을 돌아온 그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습니다. 최단신에, 30만원 가지고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온 제가 이 자리까지 올라오지 않았습니까? 저는 ‘공부하라’고 말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빨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분야에 몰입하라는 말은 꼭 하고 싶네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느낄 겁니다.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김병만씨는 중앙일보 ‘공신 프로젝트’에 신청한 학생들을 위해 5월 중 ‘꿈’에 대한 특강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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