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서재를 정리하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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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며칠 전 어떤 신문사에서 서재를 취재하자고 말했을 때 내가 난감했던 것은 빈약한 내 서재의 몰골 때문이다. 지붕 밑 다락방에는 오래 된 책들이 따로 보관돼 있는데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1천권 이상의 책들이 꽂혀있다.

지금까지 한번도 정리해본 적이 없이 닥치는 대로 모아두고만 있었는데 최근에 우연히 서재를 정리할 기회가 있었다.

가까운 신부님이 자기 성당에서 간이도서관을 만드는데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책이 있다면 기증해 달라는 부탁을 해온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는 정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기회다 싶어 어느 날 하루를 잡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쉽게 생각했던 작업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뒤늦게 깨닫게 됐다. 어느 책을 버려야 하는가. 지금은 불필요하게 느껴져 책을 버린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책이 다시 필요해지는 것은 아닐까. 또한 대부분의 책들은 저자가 직접 사인을 해서 보내준 기증본인데 어떻게 그들의 성의를 무시하고 마치 쓰레기처럼 버릴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처음에는 백여권도 채 골라내지 못했다. 그러다 2, 3차에 걸쳐 정리하면서 내 가치기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책은 내가 한 줄도 읽지 않은 것이지만 이 책이 언젠가 내게 소용이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한 미련없이 버려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천권이 넘는 책들을 하나씩 하나씩 훑어보는 동안 '책은 마음의 양식' 이라는 보편적인 진리를 넘어서 이 많은 책들이 과연 우리의 영혼에 양식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정치가 디즈레일리는 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 적이 있다.

"책은 인간의 저주다. 현존하는 책의 90%는 시원치 않은 것이며, 좋은 책이라는 것도 그 시원치 않음을 논파(論破)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에게 내려진 최대의 불행은 인쇄의 발명이다. " 디즈레일리의 냉소가 아니더라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에서 다음과 같은 저주를 퍼부은 적이 있다.

"소설책이란 것은 정말 백해무익한 물건입니다. 허튼수작을 하기 위해서 쓴 것입니다. 그런 건 빈둥빈둥 놀고 먹는 게으름쟁이들이나 읽는 물건이지요. "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에 용기를 얻어 순식간에 '백해무익(?)' 한 책을 수백권 이상 추려내는 동안 갑자기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두려움을 느꼈다.

다산작가인 내가 지금까지 낸 수많은 책들 역시 어느 누군가에겐 백해무익한 물건으로 취급돼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쓴 소설도 결국 '터무니없는 거짓말만 늘어놓은 허튼수작' 이 아닐 것인가.

그렇게 보면 나 역시 디즈레일리가 말했던 것처럼 시원치 않은 책을 통해 인간에게 저주를 양산해 내고 있는 죄인이 아닐까.

그날 오후 삼백권 이상 책을 골라낸 후 나는 어두운 서재에 앉아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약간의 자괴감 속에 잠겨 있었다. 그때 떠오른 에피소드는 철학자 볼테르의 얘기였다. 그에게 어떤 사람이 "당신의 책이 불태워지게 되었소" 하고 빈정대자 볼테르는 태연히 대답했다.

"그것 참 고마운 일입니다. 내 책은 군밤과 같아서 태우면 태울수록 잘 구워져 손님이 많이 따릅니다. " 그렇다. 책은 군밤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양서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볼테르처럼 태우고 태워서 따끈따끈하게 잘 구워진 군밤을 만들어 내는 일인 것이다.

최인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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