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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언론 싸움 자제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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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오늘 우리에게 '언론' 이란 있는가. 지금 우리사회의 언론이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과장인가.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우리의 언론은 무너지고 있으며 그 기능이 결국은 크게 위축되고 말 것이란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데 여기에는 상당한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 규범 안지킨 비판과 갈등

이런 위기감은 무엇보다 먼저 언론계에 가해진 세금추징이란 외적 충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언론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이다.

신문에 대한 방송의 비판과 비난, 신문매체들 사이의 상호비난은 너무 나가 이제는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앞으로 그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짐작이 안간다.

지금 우리 언론계는 매체간에 반목과 불신, 좀더 나아가서는 증오.혐오.원한 같은 것이 팽배해 있는 것 같다.

언론매체 상호간의 경쟁과 비판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쟁과 비판에도 일정한 규범은 있어야 한다.

일찍이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이란 저서에서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언론자유를 주장하면서도 언론행위는 온화하고 공정한 태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먼저 어떤 의견을 주장할 때의 태도는 비록 그것이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반론이 제기될 수 있고 또 심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다음으로 자기와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을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몰아가지 않아야 한다.

특히 대중 사이에 인기가 없는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비방을 받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수이고 그들을 정의롭게 대우하려고 나서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다수의견 보다는 소수의견이 이러한 모욕적인 공격을 받게 되는데 이들은 더욱 보호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주장하는 의견에 반대자가 누구며 그 의견이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조용히 지켜보고 반대자에게 불리한 내용을 과장하거나 상대방에게 유리한 것을 은폐하지 않아야 한다. 과연 지금 매체간의 비난전(戰)에서 이런 규범들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언론행위에는 이런 것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좀더 적극적인 관용이란 덕목이 있어야 한다. 언론이란 관용의 산물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무엇이 선(善)인가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란 다원주의 사회다.

민주주의 사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는 인내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그리고 결코 살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사회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언론은 관용의 산물이다.

언론행위를 할 때 상대의 의견을 관용을 갖고 듣지 않는다면 민주적 언론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용이 없이는 언론도, 민주주의도 또 함께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 언론계의 분위기는 척박하다 못해 살벌하다. 눈에는 핏발이 서있고 목소리는 높고 거칠다 못해 쇳소리가 난다. 이래서는 안된다.

이것은 언론계가 자멸하는 길이다. 언론계가 자멸한 다음의 승리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요즘의 사태로 우리언론의 정당성은 거의 그 토대부터 붕괴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언론은 어떤 의견이나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해왔다.

*** 진실은 훗날 역사가 말해

그러나 오늘의 언론은 자신의 정당성마저 급격히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런 기능을 무엇이 대체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언론밖에 없다.

약간의 관대한 분별력, 서로에 대한 작은 인내, 그리고 비록 동의는 못한다 하더라도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 이런 것을 우리 언론계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더 필요로 하고 있다.

근대가 시작될 때 있었던 종교전쟁의 경우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은 것은 힘이 아니라 관용이었다. 관용이 평화를 낳았다. 현대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언론매체 상호간의 비판과 갈등은 좋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대를 모멸하지는 않아야 한다. 그것은 품위 있는 비판이 아니다.

단지 원한과 보복만을 낳을 뿐이다. 이를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방송의 신문에 대한 비판, 신문들간의 비판은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라. 훗날 역사가 말해줄 것이다.

임상원 <고려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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