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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얘기 나오면 말문 닫아 …‘익명의 섬’ 백령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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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백령도는 심청전의 무대다. 효녀 심청이가 바다에 몸을 던진 뒤 환생했다는 인당수와 연봉바위 등이 있다. 심청전에서도 안전 항해를 바라는 어부들이 심청이를 용왕에게 제물로 바칠 정도로 조류가 거셌다. 백령도는 본래 황해도 장연군의 섬이었다가 휴전 이후 남·북으로 나눠진 옹진군에 편입됐다.

예전에는 황해도의 뭍으로 가는 뱃길이 10㎞에 불과했다. 진촌리의 심청각에 올라서면 북한 땅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그러나 휴전 이후 남한 영토가 되면서 인천까지 191㎞로 뱃길이 늘어났고 절해고도의 신세가 됐다.

60여 년간 긴장이 걷힐 새 없는 서해 최북단 접경 지역의 삶은 외지인들에게 좀 낯설다. 주민들의 일상이 서해상의 안보 파고와 맞물려 돌아간다. 어선 조업도 포구들의 군 초소에 그날그날 내걸리는 깃발 색깔에 의해 좌우된다. 그 때문에 주민들은 섬 자랑을 하다가도 군이나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이번 천안함 사고에 대해서도 어쩌다 말문을 열어도 누구인지는 밝히기를 거부해 ‘익명의 섬’으로도 불렸다.

5일 찾은 두무진 앞바다에는 북한의 보트 침투를 막기 위한 쇠말뚝들이 촘촘하게 세워져 있었다. 두무진 포구 입구에는 ‘반공희생자위령비’가 서 있다. 1970년 7월 북한 함정이 쳐들어와 조업 중인 어선들을 끌어갈 당시 희생된 이 마을 어부 4명의 혼을 달래는 비석이다.

백령도에는 육·해·공군, 해병대가 다 주둔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여성예비군 2개 소대는 해병부대에서 사격훈련까지 받는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학교 3학년 이상 학생들은 사격훈련을 받았고 학교에 무기고가 있었다. 최고참 여성예비군인 김금순(50)씨는 “유사시에는 우리 섬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자원했다”고 말했다.

주민들 90% 이상이 교회나 성당을 나가는 것도 특이하다. 1816년 영국 해군 머레이 맥스웰이 성경을 전한 이래 언더우드 박사 등 많은 선교사들이 이 섬을 다녀갔다. 1896년 국내 두 번째의 중화동교회가 선 이후 교회가 12개에 이른다.

섬이지만 농토가 넓어 ‘한 해 농사로 3년을 먹는다’는 곳이기도 하다. 유동인구가 주민 수(5000여 명)만큼 돼 관광산업의 비중이 크다. 따라서 주민들은 긴장 상태가 관광객 감소로 이어질 것을 늘 걱정한다. 김정섭 백령면장은 “우리 주민들은 국군을 믿기 때문에 평온하게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며 “천혜의 해안 절경을 자랑하는 백령도를 많이 찾아 달라”고 말했다.

백령도=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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