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무가지를 접대비 처리 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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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발표내용만 보면 언론사들이 내야 할 세금 5천억원을 계열사에 부당 지원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곳곳에 모순이 있고, 적용한 세율이나 과징금 규모도 형평에 어긋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학계와 회계 전문가들은 세법상 추징액(탈루세액+가산금)에 불과한 것이 마치 모두 탈세금액인 양 비춰지고, 법과 제도가 미비해 관행으로 여겨져온 무가지(無價紙)나 계열사 지원 등이 조사과정에서 거의 감안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꼽았다.

외화도피와 자금세탁과 같은 고의적이고 비도덕적인 부문에는 당연히 징벌적 권한을 행사해야 하지만, 나머지 관행적인 사안에는 재발 방지와 제도 개선에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췄어야 한다는 것이다.

◇ 세무조사의 쟁점=언론사에 부과된 추징세액 중 가장 큰 것이 무가지 부분(총 6백88억원)이다. 이는 말 그대로 본사가 무료로 지국에 제공하는 신문으로, 주로 분실.훼손에 대비한 비축분과 판촉용 무가지로 이뤄져 있다. 회사에 따라선 지국별로 서로 다른 배달.판매경비를 간접 지원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신문 한부의 최종 판매가격은 같지만 실제 공급원가는 산간벽지냐, 대도시 아파트 밀집지역이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 따라서 상당수 신문사들은 지국에 제공하는 무가지의 수량에 차이를 둠으로써 이같은 원가 차이를 보전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정확한 유가부수를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부 신문사는 무가지를 대폭 줄이는 대신 본사가 지국에 판매하는 유가지의 가격에 차이를 두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 경우 서로 다른 원가 차이를 보전하면서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무가지로 인한 구독강요 시비도 막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예외없이 유가지의 20%를 넘는 무가지는 모두 불필요한 경비(접대비)로 간주해 세금을 부과했다. 이 때문에 한발 앞서 제도를 개선해 무가지를 줄였던 회사도 지국에 따라 유가지 가격에 차이를 두었다며 더 많은 세금을 부과받는 모순도 나타났다.

경희대 최명근 교수는 "무가지는 세금을 탈루하기 위한 고의적 행위가 아니라 기업 회계상 판촉비용에 가까워 과세대상으로 보기 힘들다" 면서 "특히 이는 세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국세청 예규에 따라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이므로 논란의 소지가 더욱 크다" 고 말했다.

이밖에도 언론업계의 특성상 또는 현실적으로 영수증을 첨부하기 어려운 경비가 있는데 사용내역을 인정하지 않은 채 법인세와 소득세(대표이사 인정 상여)를 이중과세하기도 했다. 또 회의.행사용으로 호텔에서 사용한 경비에 대해 정부 시책에 맞춰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접대비로 간주하고, 세금계산서를 받으면 경비로 인정하는 모순도 있었다.

◇ 불공정거래 조사의 쟁점=인터넷 매체가 등장하는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몇년 전부터 활발하게 이뤄진 분사와 계열사 신설이 공정거래위의 집중적인 조사대상에 올랐다. 이에 따라 분사한 회사에 사무실을 공짜로 또는 낮은 가격으로 빌려주거나 인력을 파견한 행위, 창업비용을 대출한 사례가 많이 적발됐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당초 언론사의 한 사업부였던 분사된 회사에 분사 이전과 같은 형태의 지원을 일부 했다고 해서 이를 모두 부당거래로 보는 것은 공정거래법의 과잉 적용" 이라며 "이같은 조치는 정부가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온 분사지원 정책이나 기업 구조조정 정책과도 모순된다" 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도 각 사업 부문을 분사하지 않고 비효율적 체제를 유지한 언론사들이 부당지원행위 적발 대상에서 빠졌다.

성균관대 박재완 교수는 "감독 당국이 느닷없이 일괄 조사를 벌여 처벌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 며 "정책학적 이론상 어떤 사안들은 무조건적 처벌보다는 '경고' 와 제도개선이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현실도 중요하지만 특혜 시비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국세청으로선 조사과정과 예비추징액 통보단계에서 법 규정을 가급적 엄격히 해석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이효준.이희성.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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