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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독 수도 이전 10년… 정치는 베를린·돈은 본에 몰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0년 전인 1991년 6월 20일 통일 독일의 수도가 본에서 베를린으로 결정됐다. 당시 연방하원은 1백여명의 의원이 나와 장장 11시간의 대토론을 벌인 끝에 3백37대 3백20의 표결로 베를린 천도안(案)을 가결했다.

이에 대해 본 시민들은 "천도(Umzug)는 어리석은 짓(Unfug)" 이라고 항의하며 도시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로부터 10년.

두 도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과연 본은 당시 우려대로 '라인강변의 한적한 도시' 로 쇠락했을까. 베를린과 본의 현재 모습을 살펴본다.

◇ 베를린=도로 결정된 후 지난 10년간 대대적인 공사가 벌어졌다. 본에 있던 정부 청사와 의회가 이전해와야 하는데다 다임러 크라이슬러 등 각 기업도 본사를 대거 베를린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도심 곳곳이 '공사 중' 이다.

지난달 2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베를린에 신축한 총리공관에 입주하면서 베를린 천도가 모두 마무리됐다. 현재 베를린에 근무하는 연방정부 공무원은 8천4백명.

그러나 베를린의 경제가 나빠지면서 시정부가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10년 전 약 40만개에 달하던 일자리가 지금은 13만여개로 줄었다.

이 때문에 결국 지난 10년간 베를린 시장을 역임해온 에버하르트 디프겐 시장이 얼마 전 불신임당해 물러났다. 그래서 일부에선 베를린의 현 상황을 한마디로 '상처뿐인 영광' 이라고 꼬집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시민은 수도 이전 공사를 마무리짓는 날 21세기 유럽의 중심 도시로 다시 태어날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 본=수도를 베를린에 빼앗기긴 했지만 14개의 정부 부처 중 아직 6개가 본에 남아 있다. 잔류 공무원수는 1만1천7백명으로 오히려 베를린보다 많다.

그러나 정부와 의회가 베를린으로 옮겨간 뒤 남아도는 건물에 유럽연합(EU)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유엔기구 등을 유치하려던 계획은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우려와 달리 본은 오히려 인구가 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일자리는 1만4천개나 늘었다.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도이체 포스트(체신부)가 신축하고 있는 40층짜리 신사옥이 본의 재기를 상징하듯 웅장하게 올라가고 있다. 인구도 대폭 줄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오히려 조금 늘어 30만8천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정치' 를 얻은 베를린이 경제가 나빠져 고전하고 있는 반면 본은 '정치' 를 빼앗긴 대신 경제를 되찾아 다시 일어서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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