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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와이드] 무공해 쌀 오리농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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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오리 농법으로 무공해 쌀을 생산하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 1백70여가구 농민들은 전문 환경농업인으로 불린다.1992년 전국에서 가장 먼저 농약 한방울,비료 한줌 안쓰는 환경농업을 시작했다.

농민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논에 새끼 오리를 풀고 부농의 꿈을 일구고 있다.

꽉 꽉 꽉 꽉∼.

지난 18일 오랜 가뭄끝에 단비가 내린 충남 홍성군 홍동면 일대 들녘.비를 흠뻑 맞아 생기를 되찾은 벼잎 사이에서 무리를 지어 뛰어다니는 오리 떼의 모습이 유난히 정겹다.

전국 최대의 오리 영농단지인 이곳 농민들은 가뭄을 이겨내고 무공해 쌀을 생산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마을 농사는 지난 6일 농민들과 도시 소비자들이 논에 오리를 넣는 이색적인 행사를 신호로 본격화했다.

서울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소비자들은 홍성군 일대에서 오리농법으로 재배되는 무공해 쌀을 직거래로 구입하는 친환경 농산물애호가 들이다.

주형로(朱亨魯 ·42)씨 등 오리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1백73여 가구 농민들의 초청으로 이곳을 찾았다.

농민들은 소비자들에게 영농에 대한 믿음을 주기 위해 1995년부터 해마다 이같은 행사를 하고 있다.소비자들은 가족들과 함께 논에 새끼오리를 넣고 밭에서 고추 ·목화 등 각종 채소를 심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지난해부터 오리농법으로 생산한 쌀을 이 마을에서 구입하고 있는 김홍익(35 ·경기도 일산시 고양구)씨는 "비료나 농약을 안쓰고 재배한 쌀을 먹을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홍성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출신인 朱씨가 이 마을에 오리농법을 보급한 주역이다.

朱씨는 고교 재학 중 홍순명 교장이 "21세기는 환경농업의 시대가 된다.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이를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고 말한다.

78년 고교를 졸업한 朱씨는 아버지에게 논 6백평을 물려받아 환경농업을 시작했다.농약을 안치고 맨손으로 잡초를 제거하는 게 그가 시작한 환경농업의 전부였다.

하지만 "농약을 안친 쌀을 먹으면 백년을 사냐"는 주위사람들의 비아냥과 함께 수확량도 일반 영농에 비해 30%나 떨어졌다.

92년 초 홍순명 선생님으로부터 "일본에서 유행하는 오리농법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朱씨가 오리 농법을 해보겠다고 주위사람들에게 선전하고 다니자 93년 초 한 일간지에 이 기사가 실렸다.순식간에 오리 1천5백여마리를 살 수 있는 '영농자금'이 전국에서 답지했다.

그는 그해 임대한 논 9천평에 영농자금으로 구입한 오리를 방사(放飼)했다.오리는 모를 내고 10일쯤 지난뒤에 논에 넣었다가 벼가 다자라는 7월말쯤 꺼냈다.두달여 동안 오리는 논 바닥을 헤집고 다니며 잡초를 뜯고 각종 해충을 잡아 먹었다.

쌀 수확량도 일반 벼농사의 90%수준.성공이었다.

그는 마을 농민들에게도 오리농법을 제안했다.처음엔 냉담하던 농민들이 차츰 관심을 갖기 시작해 현재는 홍성군 홍동·장곡면 일대 1백70여가구(40여만평)농민들이 오리농법을 쓰고 있다.

3년째 1만2천여평의 논에 오리농법을 쓰고 있는 박병운(48)씨는 "당초 관심도 없었는데 주씨의 권유로 시험삼아 오리농법을 시작한 이후 지금은 '환경농업 매니아'가 됐다"며 "오리농법 쌀이 인기를 끌면서 소득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농민 이재황(64)씨는 "일손이 많이 들어 귀찮은 점도 있지만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농민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 농법"이라며 "이제는 판매망이 안정적으로 확보돼 수매걱정도 덜었다"고 말했다.

홍성의 오리농법은 급속도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4∼5년전부터 팔당호 주변 상수원보호지역에서 유기농법의 하나로 오리농법이 보급됐다.경기도 안성 ·전남 보성 ·강원도 철원등도 최근 오리농법으로 '청정쌀'을 생산하고 있다.

전량 소비자와 계약재배되는 이 쌀은 일반 쌀보다 최고 9만원 이상 비싼 가격(80㎏들이 25만원 이상)에 판매된다.

이 마을 주민들은 95년부터 일반 쌀 보다 세배이상 비싼 흑미(黑米)도 재배한다.흑미 재배 이후 소득이 늘면서 朱씨는 주민들과 함께 환경농업을 전파하기 위한 공간까지 마련했다.

이 마을 57농가가 가구당 2백만원∼1천만원씩 1억원을 모은 뒤 정부지원금 3억원을 합쳐 4억원으로 지난해 6월 환경교육관을 착공했다.교육관 건립에 쓸 흙벽돌 3만장은 농민들이 직접 찍었다.

홍성환경농업교육관(2백60여평)은 문당리 동곡마을 야산 기슭에 황토빛의 현대식 2층 건물로 착공 6개월만인 지난해 12월 19일 문을 열었다.

환경농업에 관심이 있는 전국의 농민에게 오리농법을 가르쳐 준다.인근 논은 실습교육장이다.개관 7개월만에 3천여명이 이곳을 다녀갔다.교육관과 함께 지어진 생활관은 어린이 생태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농한기에 전국을 누비며 오리농법 강연회도 갖고 있는 朱씨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 농사,소비자 앞에 올바로 서는 농업을 하는 게 환경농업의 목표"라고 말했다.

홍성=김방현 기자

그래픽=박용석 기자

그래픽=박용석 기자

*** 오리농법은…

오리 농법은 논의 잡초를 뜯고 해충을 잡아먹는 오리의 특성을 활용한 새 농법이다.모내기가 끝나면 본격화한다.이양이 끝나고 2∼3주 뒤에 부화한 지 열흘쯤 지난 새끼 오리를 논에 방사한다.

방사하는 오리 수는 잡초나 벌레 등의 양에 따라 다르지만 10a당 25∼30 마리가 적당하다.

방사 마리 수가 많을 경우 벼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오리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달아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오리 수가 너무 적으면 효과를 충분히 볼 수 없다.

오리는 몸집이 작아 벼 피해가 거의 없는 청둥오리나 청둥오리와 집 오리의 잡종,카키 캄펠종이 사용된다.

오리는 벼가 무럭무럭 자라는 7월말까지 논바닥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각종 해충과 잡초를 먹는다.오리의 배설물은 유기물질이 풍부해 비료와 같은 역할도 한다.

오리농법을 하는 농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오리를 죽이는 너구리·오소리 등 외적의 침입에 대처하는 것이다.

벼 알갱이가 여물기 시작하면 오리는 성체가 되어 먹는 양이 늘고 먹이도 떨어져 잡아 들여야 한다.잡아들인 오리는 바로 소비자나 오리 사육장에 판매한다.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쌀은 무공해 양질미로서 농협이나 계약 판매로서 고가에 거래된다.

오리농법의 성패는 오리쌀과 오리의 고가 판매에 달려있다.따라서 농사 시작 전에 소비자와 계약 등 판매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 환경농업 체험장 가볼까

홍동면 일대는 체험학습장으로도 도시 어린이 등에게 각광받고 있다.

이곳 체험학습의 특색은 체험학습을 위해 인위적으로 주변 환경등을 꾸미지 않은 생생한 영농현장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환경농업전시관 개원 이후 본격 시작된 체험학습은 주로 대도시 어린이들을 상대로 실시된다.

환경농업교육관 뒤편 소나무 숲에 가면 버섯재배 현장이 있고 산림욕도 즐길 수 있다.논에 흩어져 잡초를 뜯고 있는 오리를 감상하고 밭에 가서 각종 채소를 직접 심어볼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주형로씨는 물론이고 오리농법을 하는 농민 모두가 농지를 체험학습장으로 제공해 마을 전체가 체험학습장이나 마찬가지다. 새끼꼬기 ·야간 산 탐험 ·쥐불놀이(겨울)등 놀거리도 많다.

환경농업관 개관이후 주말마다 어린이들이 몰려와 지금까지 2천여명이 찾았다.환경농업관 옆에는 1백여명이 동시에 잠을 잘 수 있는 생활관이 있다.체험학습 비용은 식사비가 3천원,숙박비는 5천원.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서 이곳에 오려면 경부고속도로 천안IC에서 빠져나와 21번 국도를 이용하면 된다.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 당진IC를 거쳐 오는 방법도 있다.

서울에서 소요시간은 2시간∼2시간30분 정도.041-633-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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