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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부처이듯 내 마음이 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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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세상 인연 다했으니 이제 가련다."

지난해 11월 12일 저녁, 전남 곡성의 청화(1923~2003.사진)스님은 이렇게 태연히 일렀다. 상좌들과 법담을 나누던 자리였지만, 낌새가 이상했다. 조화 따위는 일절 받지 말라는 것, 다비식도 간소하게 치르되 사리 수습으로 법석 떨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겼다. 그러곤 홀연히 입적한 큰스님의 열반 소식으로 이튿날 곡성 시내가 주차장이 되다시피 했다. 전국에서 몰려온 불자와 신도들 때문이었다.

16일 다비식을 지켜본 인파는 2만명. 청화 스님이 세상 나이 60이 넘은 1983년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음을 염두에 두자면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열반 1년을 맞아 오는 21일 성륜사에서 열리는 추모제와, 이에 앞서 법문집 '말씀, 부처가 보이신 길'도 나오면서 그의 엄격한 선풍(禪風)을 다시 음미할 수 있게 됐다.

청화 스님은 40년 장좌불와와 하루 한끼만을 고집한 당대의 선승. 이 때문에 '한국의 밀레레파'로 불린다. 티베트 밀교의 밀레레파는 평생 자리에 누워본 일이 없다는 전설적인 수행승. 그런 선풍의 한쪽에 청화 스님은 불자들에게는 친근미가 없지않다. 여느 사람들에게 '만만해 보이는' 염불선의 주창자이기 때문이다.

"염불선은 천지우주가 부처이듯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생각을 확인하는 공부입니다. 어미닭이 달걀 품듯 그 생각만을 틀어쥐면 되는 누구에게나 쉽고 확실한 수행법이 염불선입니다."(법문집 128쪽)

염불선은 족보를 따지자면 신라승 무상선사의 수행법. 보통 외부의 큰 힘에 복을 빈다는 뜻 정도로 쓰여온 기복(祈福)과 달리 '내 안의 부처'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것은 중국의 혜능 이후 보편화된 공안선에 대한 제3의 카드 제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청화 스님은 수행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며 융통성을 보였다.

한편 청화 스님은 광주사범 출신. 이후 일본 메이지대 유학 중 해방을 맞았고, 해방 2년 뒤 금타 화상(호남불교의 큰 맥)을 스승으로 출가했다. 83년 이후부터는 한국전쟁 때 소실됐던 전남 곡성의 태안사를 중창했고, 만년에는 해외 포교에 눈돌려 미국 캘리포니아에 금강선원을 개원했다.

?불교의 큰스님들='큰스님'은 많은 수행으로 높은 도력을 갖춘 스님에 대한 존칭. 보통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20명)이면 큰스님이라고 하며, 이 경우 생존하는 큰스님은 30~40명이 된다.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큰스님은 석주(서울 칠보사).진제(대구 동화사).법전(조계종 종정).송담(인천 용화선원).지관(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 스님 등이 꼽힌다.

입적한 분 중 유명한 스님으로는 10분 내외. 해방 이후 입적을 기준으로 할 때 48년 입적한 만공, 51년 입적한 한암이 우선이다. 수행하려 한번 앉으면 꼼짝 안해 '절구통'으로 불렸던 효봉, '가야산 호랑이' 성철, 조계종 개혁의 기수 청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밖에 향곡.전강.서옹.고암.고암.탄허.구산도 현대사의 큰스님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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