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황령산] 中. 바람 잘 날 없는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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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황령산 개발 문제는 90년대 중반 이후 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핫이슈였다.

부산시 ·남구청 등은 시민들이 잊을 만하면 황령산의 개발 계획을 넌지시 내 놓았다.

그때마다 시민단체들은 반대운동을 펼치면서 양측의 공방전은 그칠 줄 몰랐다.그래서 황령산은 '바람잘 날 없는 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984년 부산시가 황령산유원지 개발계획 세부시설 결정고시를 하면서 시민단체의 반대가 시작됐다.당시의 반대는 성명서를 내는 정도였다.

그러나 95년 남구청과 민간업체가 황령산 운동시설 지구에 온천시설 사업을 시작하면서 시민단체들의 반대운동은 본격 불붙었다.

96년 6월 부산환경운동연합 등 62개 시민단체들은 '황령산 온천개발 저지 범시민대책기구'를 만들어 "부산의 허파훼손 결사반대"에 나섰다.

남구청은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97년 온천개발 계획안을 확정했다.시민단체들은 온천개발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남구청의 계획철회를 촉구하는 한편 당시 문정수(文正秀)부산시장을 만나 온천 개발계획 승인을 거부해 온천지구를 자연생태공원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

온천개발 문제는 정치권에도 비화, 여야 정치권도 "황령산 개발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부산을 뜨겁게 달구던 온천개발 문제는 97년 6월 여론의 압력에 밀린 부산시가 남구청이 제출한 온천개발계획 승인신청서를 반려하면서 끝이 났다.

온천개발 계획이 물 건너가면서 황령산 개발문제도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3년 뒤인 지난해 4월 '황령산 망령'은 또 나타났다.

부산시가 황령산 운동시설지구 4만여 평에 온천시설 대신 국내 최초로 '스키돔(실내스키장)'건설을 추진키로 한 것이었다.온천개발을 위해 절개한 뒤 방치된 운동시설지구를 원상복구하고 시민에게 레저공간을 제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시는 이를 위해 부산지역 중견기업인 河모 씨를 통해 5백억원대의 외자를 유치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부산시가 개발논리에 치우쳐 황령산을 또 다시 훼손하려 한다"며 "황령산은 어떠한 개발도 아닌 원상복구가 가장 바람직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황령산 개발 문제를 둘러싸고 또 다시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일 것 같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안상영 부산시장이 "시민 일반의 정서와 이익에 반하는 황령산 스키돔 사업을 굳이 강행할 이유가 없다"고 밝혀 충돌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황령산 개발 불씨는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부산시는 개발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도 '황령산 개발 절대 불가'라는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해 12월 남구청 등이 주관한 '황령산 유원지 운동시설 조성 계획'공청회는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당시 이 공청회를 "개발을 전제로 한 공청회"라며 참석 자체를 거부했다.

황령산 문제는 진퇴양난에 놓여있다.그 와중에 황령산의 상처는 깊어만 가고있다.

김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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