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역사적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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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코르시카섬 출신으로 30세에 프랑스의 (대)통령, 35세에 황제가 된 인물이다. 그에 관해서는 잘못 알려진 것이 적지 않고, 관련 사건에 대한 해설도 구구하며, 재미있는 일화도 많다.

우선 오해를 보자.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고 그 보상심리로 커다란 야망을 가지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 근거는 부검 때 키가 5피트2인치였다는 것.

하지만 이 숫자는 프랑스의 옛날 길이 단위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환산하면 5피트6인치, 당시의 평균신장이었다.

다음, 1815년 오늘(6월 18일) 벌어진 워털루 전투를 보자. 이날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벨기에의 워털루 부근에서 영국.네덜란드.벨기에.독일 연합군에 패배했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는 여기서 끝나고 그는 세인트 헬레나에 유배돼 최후를 마친다.

그러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장군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

영.미측은 웰링턴 공작이 이겼다고, 독일측은 블뤼허(웰링턴을 구하러 왔던 프러시아 군대의 지휘관)장군 덕분이라고 제각기 주장한다. 벨기에인들은 벨기에 장군이 웰링턴의 퇴각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강조한다. 교과서에도 "벨기에가 나폴레옹을 무찔렀다!" 고 씌어 있다.

'전투의 달인' 나폴레옹이 패배한 원인에 대한 해설도 다양하다. 우선, 치질이나 불면증에 시달려 평소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다. 또 당일 비가 내려 진창에 빠진 대포들이 제때에 이동하지 못했다거나 나폴레옹 특유의 병력집중.중앙돌파 전술이 영국군에 속속들이 파악된 탓이라고도 설명한다.

그는 언론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예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815년 3월 그가 엘바섬을 탈출한 이후 파리의 신문 제목은 다음과 같이 변해갔다. "코르시카의 식인귀 엘바섬 탈출" → "황위 찬탈자 그레노블 도착" → "보나파르트 리용 진군" → "황제 폐하 파리 입성!" 언론이 기존 권력에 등을 돌리는 것은 대세가 기운 결과지 그 원인은 아니라는 뜻으로 흔히 인용되는 유명한 사례다.

그러고 보니 여당 인사들이 최근 "당 지지율 하락은 언론을 '장악' 하지 못했기 때문" "지금은 민심이 아니라 여론이 나쁜 것" 이라고 한 말들이 떠오른다. 19세기 프랑스 언론의 행태가 21세기 한국 언론에도 어느 정도 적용된다면 언론은 불쾌감을, 여권은 위기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조현욱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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