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유럽 순방 결과] 부시 '빈손' 귀국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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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유럽연합(EU) 15개국 정상들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첫 만남은 결국 깊은 이견의 골만 확인한 채 끝났다.

온실가스 배출감소를 위한 교토 의정서 이행문제의 경우 양측의 견해차가 워낙 커 애초부터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이번 유럽순방에서 가장 역점을 뒀던 미사일방어(MD)구상에 대한 유럽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부시는 13일 나토 정상회담을 마치고 "냉전 이후 새로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미국의 구상을 유럽에 확신시키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고 자평했다.

하지만 EU를 이끌어가는 양대축인 독일과 프랑스는 미.EU 정상회담 전날인 13일 정상회담을 하고 MD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부시와 그의 참모들은 "유럽국가 중 최소 5개국이 MD구상을 지지하고 있다" 고 말했다. EU 회원국인 영국.스페인.이탈리아와 후보국인 헝가리.폴란드가 그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MD구상에 비판적이지 않았다.

특히 스페인은 같은 언어를 쓰는 히스패닉계가 미국 내 최대 소수민족인 만큼 미국과 상당한 이해관계가 있다. 부시가 스페인을 첫 방문지로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새로운 우파 정권도 영국에 이어 "유럽과 미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특히 안토니오 마르티노 국방장관은 1994년 베를루스코니 정권 당시 외무장관으로 "유럽이 미국을 거스르고 군사적 주도권을 쥐려고 해선 안된다" 고 믿는 인물이다. 새로 나토 회원국이 된 헝가리와 폴란드는 아직 미국과 맞설 입장이 아니다.

설령 모든 유럽국가들이 동의를 한다 하더라도 부시에게는 16일 만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설득시켜야 하는 난제가 남아있다.

러시아는 나토회담이 열리던 날에도 MD실현에 필수적인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의 개정에 응할 의지가 결코 없음을 분명히 했다.

회담이 어떤 결과를 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부시가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할 가능성이 크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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