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군 무력화 언제까지 방치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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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선박의 잇따른 북방한계선(NLL) 유린사태에 대응하는 정부의 어정쩡한 자세는 수십년래의 왕가뭄에 타들어간 국민의 마음을 더욱 끓게 만들고 있다.

월초의 1차 때에 이어 13, 14일 잇따른 북한 선박의 NLL 침범에 군당국이 보인 무기력하고 무원칙적인 태도는 그들이 과연 국방을 책임진 우리 군(軍)인가 하는 의아심을 낳게까지 한다.

특히 우리 함선과 북한 상선간에 이뤄진 교신록은 주객이 전도된 듯한 내용으로 일관했을 뿐 아니라 남북간에 북한 선박의 무해통항을 합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혹을 낳았다.

김동신(金東信)국방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재발시 강력 대응하겠다고 북한에 천명한 데 이어 남포2호가 NLL을 20여시간 침범한 14일에도 앵무새처럼 똑같은 경고를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북한의 남포호는 그 직후에도 유유히 NLL을 위반했지만 군당국은 침범이 아니고 '월선' 이라고 정의,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이 사태를 지켜보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영해 또는 관할수역의 침범 사태에 대응하는 정부의 위기관리 체제가 효율적으로 가동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은 이런 사태에는 정전협정에 따른 교전규칙이나 작전예규에 의거, 자동적으로 대처한 후 지휘계통을 밟는 사후조처를 하면 된다. 그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선 이런 군사적 조처가 정치적 고려에 의해 훼손됐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의 경고가 구두선으로 전락하면서 군의 갈지자 대응을 초래했다고 본다.

정부가 정치적으로 접근하려 했다면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북한 선박의 영해 및 NLL 통과 처리에 대한 군의 분명한 대처지침을 마련했어야 했지만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내린 '지혜롭게 대처하라' 는 선문답적 지시는 국군통수권자의 작전명령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

둘째, 군이 뒤늦게 남포호에 적용한 '월선' 개념이 감시구역상의 통과개념을 말한 것인지, 그 곳은 무해통항권을 인정하겠다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다. 정부는 NLL상의 작전인가구역 중 영해.집중경계구역.감시구역에 대해 북한 선박의 통행을 차별적으로 인정.규제하는 원칙을 세워 실행에 옮기면서 북한에도 동일한 요구를 하는 방법도 연구해봄직하다.

그럴 경우 군도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고, 남북간.남남간의 소모적인 혼란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지 않겠는가.

셋째, 수시로 변한 정부의 대처와, 6.15 남북 정상회담시 제주해협 개방에 합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북한 선박측의 항변, 제5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대비한 관계부처간의 남북 해운합의서 작성 협의 등이 얽혀 우리 해역의 북한 선박 개방에 관한 6.15 밀약설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밀약설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왜 이런 의심을 받아야 하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남북간의 주요 사안을 비밀에만 부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야당 수뇌부에게는 어느 정도 진전상황을 알려주는 것이 투명성 확보는 물론 대북정책의 순조로운 집행에도 절대적으로 도움이 될 것임을 성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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